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일본은행(BOJ)이 나란히 통화정책 속도조절에 나섰다. 관세발 물가 상승 압력, 정치적 간섭 우려, 글로벌 금융여건 과도 완화라는 ‘삼중 압력’ 속에서 속도 조절 없이는 정책 신뢰와 시장 안정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 ‘맞춤형 완화’로 정책 전환
18일(현지시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IMF 강연에서 “금리 인하 조건과 점검지표를 명확히 공유하고, 필요시 대출지원 프로그램(FfL)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정밀 조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단순 기준금리 인하 대신 ‘합성 완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핵심은 대출지원 프로그램(FfL)의 가격·공급·위험분담을 정밀 설계해 총수요를 방어하면서도 부동산·개인신용으로의 유동성 누수를 막는 것이다. 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붙이되 대출 실적에 따라 할인 폭이 자동 조정되는 가변 스프레드를 적용하고, 공급 한도는 분기별로 쪼개 중소기업·수출·설비투자·그린·디지털 전환에 배분한다. 소진 속도·부도율이 높은 부문은 다음 분기 금리를 올리거나 공급을 줄이는 ‘룰 기반 캘리브레이션’을 적용한다.
위험 분담은 정부의 신용보증·정책금융이 먼저 손실을 떠안는 ‘퍼스트 로스(first loss)’ 구조를 앞세우고, 중앙은행은 가장 안전한 시니어 트랜치만 담당해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이를 통해 필요한 곳에는 유동성을 공급하되, 레버리지 과열은 절연하는 설계다. 시장 안정장치도 정교화한다. 국채·레포 시장에서는 담보 인정 범위와 헤어컷 비율을 미세 조정해 담보 부족으로 거래가 멈추는 사태를 예방하고, 외환시장에서는 현물–선물 가격차, 환율 호가 스프레드, 마진콜 규모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긴급 외환스왑·FX 레포를 열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한다.
핵심은 환율의 ‘수준’이 아니라 변동 속도를 관리하는 것이다. 급등·급락으로 시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속도를 완화해 충격을 줄인다. 커뮤니케이션도 선제적으로 강화한다. 점도표와 의사록을 통해 금리 인하 조건(근원물가 3·6·12개월, 임금·서비스 물가, 가계부채 증가율, 외화조달 비용)을 사전 공표도 논의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대출 규제(LTV·DSR)와 PF 익스포저 등은 ‘작게·자주’ 손보는 미세 조정으로 과열 신호를 신속히 제어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보험성 인하 후 ‘속도 조절’
연준은 이번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4.00~4.25%로 낮췄다. 11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제롬 파월 의장은 “어떤 선택도 위험이 따른다”며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금융여건(FCI)이다. 미국 금융시장은 주식 랠리, 회사채·주택담보대출 금리 스프레드 축소, 모기지·회사채 발행 회복 등으로 이미 크게 풀린 상태다. 이는 연준의 금리 인하 효과를 사실상 증폭시키는 동시에, 자산가격 과열과 인플레이션 재점화 위험을 키울 수 있다.
FCI 지표는 과거 긴축 국면 대비 완화 폭이 커졌으며 실물경제에 가해지는 제약은 거의 사라졌다.
주식·신용시장의 위험 프리미엄이 좁혀지며 차입 비용이 내려가고, 주택·기업 투자 수요가 살아나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 상황에서 추가 인하는 자산 랠리를 가속화하고 금융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연준은 인하 속도를 늦추고 데이터 의존적 접근을 강화할 전망이다.
▲일본, 질적 정상화(QE Exit) 가속
일본은행(BOJ)은 기준금리를 0.5%로 동결했지만,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10~12월 사이 한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다”며 점진적 정상화를 시사했다. BOJ는 장기 국채 금리 상단(YCC)을 이미 해제했고, 임금 상승·물가 기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지, 가계 구매력이 회복되는 속도를 보면서 추가 인상 시점을 정할 계획이다.
핵심은 보유 자산 매각이다. BOJ는 매년 0.2~0.3%포인트 속도로 배당환원형 매각을 통해 ETF 보유 비중을 줄이고, 일본국채(JGB)는 되사기(바이백)·스위치 오퍼레이션으로 만기 구간 병목을 해소한다. 가격 저점 신호는 차단하고, 연기금·보험사 같은 장기투자자를 상대방으로 제한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세 나라 중앙은행의 메시지는 같다. 완화·긴축의 강도와 속도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FfL·거시건전성·FXI를 조합해 누수 없는 완화를 설계하고, 연준은 과도한 완화를 경계하며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한다. 일본은행은 질적 정상화로 시장 충격을 줄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향후 주목할 변수는 금리 방향 자체가 아니라 속도와 강도 조율의 정밀도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물가·성장·금융안정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한·미·일의 공통 경고로 분석된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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