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송진현] 우리은행에는 과거 오랜 기간 파벌이 존재했다.
한일은행 출신이냐 , 아니면 상업은행 출신이냐에 따라 양대 파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은행 내에서 실력이 아니라 두 파벌이 인사를 좌지우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뿌리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도 위기에 몰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을 합병시켰다. 그래서 탄생한 은행이 한빛은행이고 2002년 한빛은행은 우리은행으로 사명을 교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병 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은 수십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간판 은행이었다.
합병 당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직원수는 7000여명으로 비슷했다. 이후 우리은행에선 상업은행 출신과 한일은행 출신 간의 세력 다툼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장도 한 번 상업은행 출신이 맡으면 다음에는 한일은행 출신이 오르는 관행이 이어졌다.
역대 은행장을 살펴볼 경우 이종휘(한일), 이순우(상업), 이광구(상업), 손태승(한일), 권광석(상업) 등의 순으로 철저한 계파 안배가 이뤄졌다.
현 정진환 우리은행장은 한일은행 출신이다. 직전의 조병규 은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일과 상업출신 양대 파벌싸움의 폐해가 만만치 않았다. 우선 내부 통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계파 간 불신이 깊어 내부에서 견제가 늘어나다보니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저하되었던 것이다.
인사와 채용과정도 공정하지 못한 절차가 진행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계파가 어디냐에 따라 승진에서 ‘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계파에서 자유로운 임종룡 회장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뿌리 깊은 파벌싸움을 청산시켰다.
임 회장은 올 1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퇴직직원 동우회를 26년만에 우리은행 동우회로 재출범시켰다. 전임 우리은행장들을 설득한 결과 이뤄낸 소중한 성과였다.
임종룡 회장은 취임 후 인사기록 카드에서 출신은행을 지우고 능력에 따른 인사를 실시했다. 임 회장의 노력으로 지금은 우리은행 내 파벌은 사라졌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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