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인성구기(因聲求氣)의 깨침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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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인성구기(因聲求氣)의 깨침 外

연합뉴스 2025-09-19 09:56:34 신고

3줄요약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

말하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뜨악'(?)하다.

이건 구어와 문어의 부적절한 조합이다. 나는 이 얼토당토않은 확산에 소위 많은 '먹물'의 존재를 의심한다. 학회, 포럼, 세미나 등에서 논문 인용을 그대로 쓰던 행태가 유식하게 보이려는 욕망과 접점을 이룬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화법(話法)에서 앞말의 역접으로는 '하지만, 그렇지만, 다만'이 적절하다. 아니면 '불구하고'를 뺀 채 '그럼에도'만 하는 게 그나마 낫다.

◇ '염'에 대한 잡다한 생각

'염치불구하고'는 틀린다. 불구(不拘)는 '구속받지 않는다/얽매이지 않는다'의 의미다. 염치(廉恥)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체면을 차릴 줄 아는 태도인데, 그것에 구속받지 않겠다는 건,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그런 말은 상대에게 예의상 할 수 없는 말이다. '염치(를) 불고하고'가 맞는다.

이 말은 불고염치(不顧廉恥)란 말에서 왔다. '염치를 고려하지/생각하지 않고'란 뜻이다. 어려운 부탁을 할 때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두겠다는 말이다.

염두하다?

'염두하다'란 말은 없다.

'염두하시기 바랍니다/염두한 조치', 이런 용례가 보이는데 오류다. '염두(念頭)에 두다'가 옳다. '생각의 시초' '마음속'의 의미다. '염두 밖의 일' '염두에 없다' 등은 맞는다. 발음은 [염:두]다.

염장 지르다?

염장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심장의 순우리말 '염통'과 '심장'(心臟)이 결합해 '염장'이 되고, 그 염장을 '지르니', 곧 아프게 하니 '화를 돋우다'의 뜻으로 고착됐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적이다. 이 염장은 따라서, 표준어는 아니다. (과거 60년대 서영춘 주연 '염통에 털 난 사나이'란 영화가 있었다.)

'염하다'는 크게 둘이다. 우선 염(殮)하다 [염ː하다]가 있다.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 따위로 싸는 걸 말한다. 염(念)하다 [염ː하다]도 있다. 불교에서 조용히 불경이나 진언(眞言) 따위를 외우는 것이다. (=염:불(念佛)하다)

'염증'도 얼추 둘이 있다. 몸에 나는 염증은 염증(炎症)으로 [염쯩]이라고 짧게 소리 나지만, 세상이 싫은 염증(厭症)은 [염ː쯩]으로 길게 발음한다.

어떠한 물리 에너지와 관련하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는 힘 따위를 가리키는 초능력의 하나인 염력(念力)도 [염:력]으로 길게 소리 난다.

'염량세태'란 말도 쓸모 있다.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금의 인정물태(人情物態,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세상 물정)는 거의 염량세태와 다름없을 것이다.

서울 강남에 염곡사거리가 있다. 이곳 지형이 사람의 심장, 염통처럼 생긴 골짜기라 염통골이라 했는데 한자화하면서 염곡(廉谷)이 됐다.

광주에는 염주체육관이 있다. 이 일대가 과거 염주동(念珠洞)이었는데 마을의 집들이 염주가 실에 꿰어있듯 이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염광(鹽光)이란 학교 이름이 많은 것은 성경 말씀 '빛과 소금'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 염광 여상 브라스밴드가 유명했다.

염씨(廉氏)는 파주(坡州) 본관이 압도적이다.

유명인으로 작가 염상섭/문학비평가 염무웅/염수정(추기경)/염복순, 염정아(배우)/염기훈(전 축구 국가 대표)/염동균(복싱 전 세계 챔피언)/염수연(가수) 등이 있다.

◇ 호주와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이건 불통이요 오만이다.

물론 한자식 가차음(假借音)을 지양하고, 교과서 위주의 국명을 준용하겠다는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는 입장을 말하리라. 호주(濠洲)를 그래서 안 쓴다고.

그러나, 두 원칙을 지키려면 독일도 도이칠란트로 적어야 한다. 더구나 독일은 유일한 일본식 표기 독일(獨逸, 도이츠ドイツ)의 음차다.

아니면 중국식으로 최소한 덕국(德國) /덕의지(德意志)로 친일성만큼은 소거/배제하는 줏대라도 보이든가. 미국도 아메리카합중국, 영국도 브리튼 왕국으로 해야 원어 국명 수칙에 충실한 것일 테고.

신문사의 나름 숭고한(?) 원칙도 다수 언중과의 원활한 소통이라는 가치 앞에선 유연해야 한다. 다른 신문/방송도 바보는 아니다. 호주는 이제 대단히 보편적이다.

7음절 오스트레일리아를 두 음절로 줄이는 축약 효과에다 고질적인 오스트리아와의 혼동도 근절해 주는 미덕까지 탑재했다.

"뭣이 더 중한가?" 겸허해져야 한다.

◇ 인성구기(因聲求氣)의 깨침

누군가의 책 속에서 내겐 생각 속에만 머물던 것이 정돈된 주장과 이론으로 말끔히 돼 있음을 발견하게 될 때, 한편으론 허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뿌듯해진 경험 있으리라.

인성구기(因聲求氣, 소리로 인해 기운을 구한다/소리를 타야 기운이 찾아진다는 뜻)의 뜻을 알고 무릎을 '탁' 쳤다!

책은 성독(聲讀), 즉 소리 내어 읽어야 여러 효과가 난다는 말이다. 학창 시절, 어학 과목은 무조건 외우라는 선생님들의 주문은 당시로서도 다분히 억압적이고 수긍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청나라 문호 요내(1731-1815)는 진즉, 소리가 의미에 선행하며 소리를 고르게 내어 반복적으로 책을 읽으면 그 뜻이 어느새 자기 안에 맺힌다는 이론을 설파한 것이다.

신속/편의/재미만을 좇는 터치와 클릭의 시대. 앞 사람, 옆 사람하고도 그저 문자만으로 소통하고 도무지 말을 안 하는 세상이다. 말하기가 자꾸 싫어지는 것은 그 내용의 적절성/부실함을 걱정하는 이유도 있겠으나, 입술/혀/주변 근육을 놀리고 부리는 행위 자체가 낯설고 귀찮은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텍스트를 작게라도 소리 내 읽어 보자. 자기만의 리듬이 생긴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이리라. 읽다 보면 그다음엔 말하고 싶어진다. 저절로 표현력이 강화된다. 소리의 신통한 힘이요 기운이다.

난 이미 틀렸다고? 그럼, 아이들한테로 시선을 돌려보라. 국어를 좋아하게 되고 국어 실력 늘어나는데, 얼마 전 산 미추첨 로또 넉 장 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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