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HMM의 민영화를 둘러싼 논의가 재점화되면서, 국내 해운산업이 중대한 분기점에 놓였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BIS(국제결제은행) 규제에 따라 보유 지분 매각 압박을 받는 가운데, 포스코가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면서 해운업계 안팎의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현재 시가총액 24조원 규모로 평가된다. 산은이 36.02%,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35.67%를 보유해 정부 측 지분은 71.69%에 달한다. 당초 공적자금 투입으로 사실상 국유화된 HMM의 향후 지배구조 개편은 산업 구조 전반에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산업은행의 지분 매각은 자본건전성 규제 때문이다. BIS 규제에 따르면 은행이 특정 기업 지분을 자기자본의 15% 이상 보유할 경우 초과분에 1250%의 위험가중치가 부과된다. 이는 산업은행의 대출 여력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산은은 지난 7월 금융당국의 규제 유예 결정으로 지분 매각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기한은 3년이다. 오는 2028년 6월 유예 종료 이후엔 규제 적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그 전에 HMM 지분 매각을 마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해운업황도 변수다. 팬데믹 당시 급증한 물동량과 운임 상승 덕에 HMM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관세 장벽 강화로 글로벌 물동량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초대형 선박 인도가 본격화되면 공급 과잉과 운임 하락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산은이 현 수준의 주가에서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매각 시점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그룹이 삼일PwC, BCG, 대형 로펌과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인수 방안을 본격 검토 중이다. 탄탄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인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선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HMM 인수에는 최소 7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그룹 지주사 포스코홀딩스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으로 약 16조5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HMM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포스코가 HMM 인수 후보로 부상하자 해운업계와 학계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대형 민간기업의 참여가 산업 안정성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철강과 해운의 경기 사이클이 겹치면서 발생할 리스크와 사업적 시너지의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HMM 인수 문제는 단순한 지분 매각을 넘어 한국 해운산업의 구조와 향후 전략을 좌우할 중대한 분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해운협회와 일부 전문가들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포스코가 HMM을 인수할 경우 해운 전문기업으로서의 독립성이 약화돼 철강 산업의 보조적 역할로 전락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기존 선사들의 물량이 축소되며 해운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결대 한종길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철강과 해운은 경기 사이클이 유사해 리스크가 중첩될 수 있다”며 “포스코가 말하는 내부거래 효율은 글로벌 철강사들이 해운 자회사를 정리하고 본업에 집중해온 관행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 교수는 “HMM 매출 대부분이 컨테이너에서 나오기 때문에 벌크 위주의 철강 물량과 맞물리기 어렵고, 초대형 선사들과의 체력 격차를 감안하면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측면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HMM 인수는 포스코보다는 물동량 기반이 확실한 글로벌 화주나 조선사가 더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해운법 24조에 따라 대량화물 화주가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의 해운업 등록 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정책자문위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절차 자체는 ‘자문’이지만 해운업계 반발을 고려한 정책 판단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해운 생태계 측면에서는 포스코 내부화로 기존 선사 물량이 줄어드는 부정적 파급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반면 대형 민간기업의 참여는 해운업 안정성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있다. 업종 경계가 허물어진 ‘빅블러(Big Blur)’ 환경에서 진입 장벽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제도적으로도 진입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국국제물류사협회 구교훈 회장은 “해운업을 해운인만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낡은 인식”이라며 “해운법이 등록제로 바뀐 뒤 정책자문위의 자문은 법적 구속력이 약해 제도적으로 진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코는 가족 경영 체제가 아니라 대규모 투자나 위기 상황에서도 의사결정 안정성이 높다”며 “보유한 벌크 물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HMM과 시너지는 ‘만드는 것’이고, HMM이 낮은 부채비율과 풍부한 현금 여력을 갖추고 있어 인수 이후 충격도 흡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의 인수 여부는 시너지 검토와 사업성 분석 결과에 따라 향후 결정될 전망이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현재 HMM 인수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철강·2차전지 등 기존 주력 사업과의 시너지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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