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외국 기업과 달리 미국 특허기업에만 일관되게 국내 과세권을 인정하지 않아 왔던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 이번 전합 판결은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에 대한 과세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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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경정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가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미조세협약상 ‘특허의 사용’은 특허권 자체가 아니라 특허기술을 사용한다는 의미”라고 핵심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 “특허기술의 사용은 특허가 등록된 국가가 어디인지와 관계없이 어디서든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제조회사인 SK하이닉스는 2011년 한 미국법인으로부터 특허침해소송을 당했다. 2013년 양측은 소송을 종료하고 미국 등록 특허권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SK하이닉스는 계약에 따라 매년 160만달러의 사용료를 지급하면서 원천징수분 법인세 3억1000만원을 납부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해당 특허가 국내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내원천소득이 아니라며 법인세 환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천세무서장이 이를 거부하자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SK하이닉스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권은 등록된 국가 영역 외에서는 침해될 수 없어 이를 사용하거나 그 사용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미국법인이 특허권을 국외에서만 등록하고 국내에는 등록하지 않은 경우 그와 관련해 지급받는 소득은 사용의 대가가 될 수 없으므로 국내원천소득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해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제1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이 정당하다”며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관 다수의견(10인)으로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 한미조세협약 해석에서 핵심 근거를 제시했다.
먼저 “한미조세협약에서 정의되지 않은 용어는 달리 문맥에 따르지 않는 한 우리나라 법에 따른 의미를 가지도록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 후문은 해당 특허의 특허기술을 제조 등에 사실상 사용하는 경우 이를 특허의 사용으로 해석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특허권 속지주의’는 특허기술의 국내 사용이 국외 특허권자에 대한 특허침해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이로부터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거나 그 특허기술에 재산적 가치가 없어 사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 사용료가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의 대상인 특허기술을 국내에서의 제조·판매 등에 사용하는 데 대한 대가라면 이는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반면 노태악·이흥구·이숙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는 등록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권리로서의 ‘특허권’을 의미한다”며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의 사용’은 해당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한미조세협약상 ‘특허의 사용’이 해당 특허권이 미치는 국가 영역 내에서 이뤄지는 특허발명의 실시만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경우 국내에서 사용 자체를 상정할 수 없다고 봐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라이선스 대상 특허의 등록지와 관계없이 해당 특허의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실제 사용했다면 이는 특허의 국내 사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미국법인이 그에 관해 지급받은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으로서 국내 과세권이 미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은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대기업들이 매년 외국 기업에 지급하는 천문학적 특허 사용료 분쟁 해결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2008년과 2019년 법인세법을 개정해 과세 근거를 마련해왔지만 대법원의 소극적 해석으로 과세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제 미국 특허기업들의 사용료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가 가능해져 대규모 세수 증대 효과와 함께 국부 유출 방지 효과도 기대된다. 다만 이 사건은 파기환송된 만큼 하급심에서 구체적인 특허기술의 국내 사용 여부에 대한 재심리가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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