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가을의 맛과 지혜,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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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가을의 맛과 지혜, 대하

연합뉴스 2025-09-18 08:58: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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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하구이 대하구이

[연합뉴스 자료 사진]

가을은 한국인의 삶에서 특별하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들녘은 황금빛 물결로 찰랑이며, 산에는 붉은색의 단풍이 피어올라 화려하게 장관을 이룬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바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여름 내내 뜨겁게 달궈졌던 바닷물이 서서히 식으면서 차가워진 가을 바다는 생명력을 응축시킨다.

그 속에서 길러진 수산물은 살이 단단하고 맛이 절정을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가을 대하(大蝦)다. 이름 그대로 몸집이 큰 새우를 뜻하는 대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오랫동안 가을의 풍요를 대표해온 별미다.

◇ 역사와 문화 속 대하

대하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연안에서 잡히는 토종 왕새우로, 크기가 크고 단단하며 깊고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대하가 나오며,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으로 귀하게 쓰였다는 사실은 대하가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새우는 흔히 잡히는 해산물 같지만, 그중 대하는 크기와 맛에서 현저히 뛰어나 예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특히 서해안의 가을 대하잡이는 지역 공동체의 큰 행사였다. 충남 보령과 태안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매년 가을 대하 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미식가를 불러 모은다. 붉게 물든 석양빛을 배경으로 포구에 가득 올라오는 그물 속 대하, 그리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금 위에 구워 먹는 대하구이의 향은 곧 가을의 풍경 그 자체다.

먹는 즐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풍요와 공동체의 화합을 상징하는 문화적 풍경이기도 하다.

농번기를 마치고 가족, 이웃과 함께 둘러앉아 대하를 나누어 먹는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숯불 위에 껍질째 구운 대하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향은 여름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겨울을 대비하는 힘을 채워주는 가을의 선물이었다. 노동과 생계, 휴식이 어우러진 한국적 공동체의 정서를 담고 있다.

새우는 본래 다산과 길상의 상징이었다. 몸은 구부러져 있으나 앞으로만 움직이는 습성 때문에 '끊임없는 전진과 번성'의 기운을 담았다고 여겨졌다. 특히 대하는 크고 힘이 있어 집안에 대하가 오르면 가정이 번창한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약선에서는 새우가 따뜻한 성질(溫性)을 가졌으며, 맛은 달면서 짜고(甘鹹), 간과 신경(肝腎經)으로 들어간다고 본다. 신장을 보하고 양기를 돋워 남성의 정력 강화, 혈액순환 촉진, 관절통 완화, 산모 회복 등에 좋다고 전해진다. 특히 두부, 자소엽, 토마토와 함께 조리하면 맛과 효능이 배가되며, 찬 과일과의 조합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옛사람은 가을 대하를 먹으면 여름의 기운을 보충하고 겨울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제철 음식'의 지혜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삶을 조율하는 것이다.

현대 영양학 역시 대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대하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100g당 열량은 90kcal 안팎에 불과하지만, 필수 아미노산이 고르게 들어 있어 근력 형성과 체력 회복에 좋다. 특히 풍부한 타우린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간 기능을 보호하며 피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하의 붉은 빛을 내는 아스타잔틴은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노화를 방지하고 면역력을 높인다. 껍질에는 칼슘과 인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나 노인의 뼈 건강에 이롭고, 껍질째 구워 먹으면 골다공증 예방 효과도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혈액순환과 뇌 건강을 돕고,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은 세포 손상을 막고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

최근에는 대하 껍질에서 추출한 키토산이 혈중 지질 개선과 체중 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며, 대하는 별미 이상의 현대 보건학적 가치가 큰 기능성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대하 맛 최고예요" "대하 맛 최고예요"

(태안=연합뉴스) 충남 태안군의 대표 수산물 대하를 맛볼 수 있는 대하축제가 30일 안면도 백사장항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관광객들이 대하 소금구이를 먹고 있다. 내달 14일까지 계속될 이번 축제는 맨손대하잡기, 어린이낚시왕 선발대회 등이 이어진다. 2018.9.30 [태안군 제공]

◇ 손자병법으로 본 대하 요리의 지혜

대하는 구이·찜·탕·튀김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즐겨왔다. 각 조리법은 맛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손자병법에 나오는 대로 삶과 전쟁의 원리를 적용해 봤다.

대하구이는 집중과 폭발이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속살의 단맛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듯, 축적된 힘이 집중적으로 발산되는 원리다. 대하찜은 완급과 균형이다. 센 불에서 시작해 은근한 증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전쟁에서의 전술적 완급 조절과 흡사하다.

대하탕은 흐름과 유연함이다. 무와 두부, 파·마늘과 어우러진 시원한 국물은 집단의 조화를 상징한다. 대하 튀김은 형세의 전환이다. 뜨거운 기름 속에서 바삭하게 탈바꿈하는 과정은 전쟁에서 불리한 국면을 역전하는 기지와 닮았다.

손자병법 '병세'(兵勢) 편에는 "병은 물과 같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허한 곳을 치며 실한 곳을 피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전쟁에서 물처럼 유연하게 형세를 활용하고, 모인 기세를 한순간에 폭발시켜야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하는 여름 내내 잔잔히 힘을 모으며 가을이 되어 살이 차오른다. 이는 병세가 말하는 '축적과 발산'의 원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음식과 전쟁, 그리고 삶이 서로 통한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장수가 형세를 다스리듯, 요리사는 제철 식재료를 고르고 조리법을 통해 최상의 맛을 길러낸다.

가을밤 포구에서 숯불 위에 구워낸 대하를 한입 베어 물면 많은 감흥이 스민다. 고소한 향과 단맛은 곧 삶의 지혜다. 병세가 가르치듯, 우리는 형세를 읽고 때를 알아 힘을 발휘해야 한다. 대하가 여름 내내 힘을 품다가 가을에 최고의 맛과 효능을 내듯, 우리 또한 때로는 멈춰 힘을 비축하고, 때로는 집중적으로 터뜨릴 순간을 알아야 한다.

포구의 대하 포구의 대하

[연합뉴스 자료 사진]

극성을 부리던 여름 더위가 지나고,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이 스치는 가을 한가운데, 통통히 살 오른 대하는 계절의 풍요를 대표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이어 온 자연과 조화의 지혜, 그리고 건강과 번영의 상징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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