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무소속 이춘석 의원이 차명으로 10억원이 넘는 규모의 주식을 매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출처를 추적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의원이 최근 4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이 4억2천만원에서 4억7천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경찰 조사에서 “출판기념회와 경조사비 등을 통해 주식 투자금을 마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정치인들은 자금 출처를 해명할 때 ‘출판기념회’와 ‘경조사비’를 마치 ‘마법의 지팡이’처럼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 의원의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떤 정치인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현금이 발견되면 이를 출판기념회 수입이라고 주장하거나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을 설명하면서 경조사비를 언급한 경우가 반복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보면 해당 주장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모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출판기념회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하는 창구로 기능하기 때문에 문제이고 거짓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문제다. 출판기념회를 둘러싼 이런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일부에서는 아예 출판기념회를 금지하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다지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면 다른 정치자금 모금 방식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예전이나 미술전 같은 방식이 그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서예작품이나 미술작품은 정해진 시장 가격이 없고 구매자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번에 김건희씨 오빠 집에서 발견된 이우환 화백의 그림 가격 논란을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만에서 해당 그림은 3천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해당 그림이 그 정도 가격에 팔렸다는 점과 다른 이유를 들어 위작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작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 그런 가격에 팔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조차 책을 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예술품을 통한 자금 모집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출판기념회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출판기념회에서의 거래 규모를 철저히 관리하고 책을 반드시 정가에만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조치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카드 결제로만 구매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가 판매 원칙을 효과적으로 지키게 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이 1부를 초과해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아무리 정가로 판매하더라도 한 사람이 수십부를 구매한다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출판기념회에서 발생한 판매 금액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정확히 보고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출 내역까지 함께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발견되거나 신고 재산보다 많은 지출이 드러날 경우 출판기념회를 자금 출처의 ‘알리바이’로 삼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돈 안 드는 정치’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들지 않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돈 적게 드는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접근이다. 그런 점에서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집 창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합법의 외피를 쓴 탈법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제도 정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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