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를 향해 또다시 고율 관세 카드를 꺼내 들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 산업계가 강한 긴장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영국 국빈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나서면서 일부 국가의 자동차 품목별 관세를 15%로 타협한 것에 우려가 나온다는 질문에 "저는 무엇도 타협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일본, 유럽연합(EU)에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무역 합의를 타결했다. 이후 미국 자동차 업계는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수년간 아무 관세도 내지 않았으며 이제 15%를 내고 있다"며 "어떤 것은 더 많은 관세를 낼 수 있다. 반도체는 더 낼 수 있고, 의약품도 더 낼 수 있다. 반도체와 의약품은 이익률(margin)이 더 높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다른 자리에서 반도체 품목 관세율은 100%로, 의약품은 150∼250%로 언급한 바 있다.
이어 그는 “내가 오기 전까지 우리한테 아무것도 내지 않았던 유럽연합(EU)과 일본이 관세 때문에 9500억 달러, 6500억 달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미 관세협정에도 불안한 시장
현재 한국산 반도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최혜국 대우’ 조항에 근거해 무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의 무역정책 방향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미 양국 간 협정이 있다고 해도 조항 해석이나 비상 상황 조치를 이유로 고율 관세가 돌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지난 수년간 반도체를 전략물자 지위로 격상시키며 공급망 주도권을 틀어쥐려는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 차질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규정하면서 자국 내 투자와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관세·보조금·수출 규제 등 각종 지렛대를 총동원 중이다. 이번 발언 역시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압박하는 수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산업계 ‘긴장 고조’…관건은 ‘최혜국 대우’
관세 인상 가능성이 공개석상에 언급되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은 물론 산업 전반에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70%대에 달하는 절대 강자지만 수출 구조 면에서는 미국 비중이 35% 안팎에 이르는 만큼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단순히 가격 경쟁력 상실에 그치지 않고 미국 내 고객사들의 공급망 재편 요구가 본격화될 수 있다”며 “사실상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압박하는 통상 무기”라고 평가했다. 자동차 부품, 디스플레이 등 연관 산업 역시 연쇄 불똥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건은 ‘최혜국 대우’에 대한 해석이다. 산업계와 정부 모두 눈여겨보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최혜국 대우’ 약속이 어떤 형태로 현실화될지 여부다. 국제통상 규범상 최혜국 대우는 특정 국가에 차별적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원칙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자국 해석에 맞게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일본·EU와의 개별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낮춰준 만큼 반도체에서는 상응한 양보를 요구하는 ‘교환 카드’ 성격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항공기·의약품 등 다른 민감 품목으로 압박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통상 당국 내부에서는 이르면 올해 12월 이전에 반도체 관세 가부가 판가름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대선 2년 차에 접어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강력한 통상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미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등 선제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관세 변수는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도체가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대응 전략도 단기적 피해 최소화를 넘어 중장기적 공급망 재편과 정책 외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까지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한국 산업계는 다시 한번 낯선 불확실성의 파고와 마주했다”며 “한국으로서는 ‘최대 수출 효자 품목’이 통상전쟁의 앞자리에 선 만큼 장기적 측면에서 대미 협력, 공급망 재편 전략, WTO 규범 대응 등 다각적 대응 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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