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최초로 내부 출신인 박상진 신임 회장이 임기를 개시하면서 산은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부산 이전 문제로 이어져온 노사 갈등은 점차 해소될 전망이다. 박 회장이 부산 이전 철폐를 사실상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다만 굵직한 과제들이 남아있다. 순탄치 않아 온 HMM‧KDB생명 매각, 새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에 활용될 첨단전략사업기금 운용 문제 등이다.
사상 최초 내부 출신 회장
박 회장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취임식을 가진 후 본업에 들어갔다. 이로써 지난 1954년 산은 창사 이래 최초로 내부 출신 회장이 등장했다. 산은 강석훈 전 회장이 지난 6월 5일 퇴임한 후 3개월간 공백이던 자리도 채워졌다.
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산은이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언급했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고 미래성장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수단으로 금융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산은은 모든 역량을 첨단전략산업 지원, 중소‧벤처기업 육성 및 지방산업 체질 개선, 전통산업에 대한 생산성 제고와 산업구조 재편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산은 신임 회장으로 전 산은 준법감시인이던 박 회장을 임명 제청했다. 산은 회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위는 생산적 금융에 초점을 둔 금융정책에 맞춰 산은도 첨단전략산업 지원 등 정책금융 업무를 맡게된 가운데 박 회장을 적임자라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1962년생으로 전주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중앙대 법학과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다. 30년간 산은에 몸담으며 기아그룹‧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 TF팀, 법무실장, 준법감시인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지난 2019년에 산은을 퇴직한 뒤엔 2022년까지 서부광역철도 부사장을 수행했다. 박 회장은 금융법과 기업구조조정에 능한 정책금융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 이전 갈등 잠재우나
치열했던 부산 이전 논쟁은 강 전 회장이 퇴임하고 한풀 꺾이더니 박 회장이 취임한 후 더욱 잠재워지는 분위기다. 박 회장은 취임한 당일 오후에 취임사와 별도로 직원들에게 부산 이전과 관련해 임직원 간 갈등을 없애고 제자리를 찾아가자고 독려했다. 직원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 회장은 노동조합과의 소통에도 공을 들였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는 박 회장 취임식 당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박 회장이 임명된 이후 첫 일정으로 노조 운영위원 면담을 가진 부분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조는 이날 성명서에서 “신임 회장은 본점 이전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이전공공기관 해제를 추진하는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노조와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9일 박 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내정된 다음날 노조는 박 회장에게 노조 요구안을 전달했다. 크게 네 가지로 부산 이전 완전 철폐, 선진 민주 경영 체제 확립, 노동 환경 개선, 상생 조직문화 형성이 담겼다. 노조는 이중에서도 부산 이전에 대한 부분을 가장 강조했다.
강 전 회장 임기 동안 산은은 부산 이전 관련 팽팽한 노사갈등을 겪어 왔다. 강 전 회장이 선임되자마자 산은 부산 이전을 추진하면서다. 부산 지점에 인력을 보내는 조직 개편을 강행하는 등 강 전 회장이 부산 이전을 강력히 몰아붙이자 노조도 집회를 비롯해 강경하게 반대 의사를 보여왔다. 이에 직원들이 대거 퇴사하며 지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사자만 연간 평균 대비 2.6배에 달할 정도였다.
남은 과제는?
박 회장 취임으로 대내외 갈등이 촉발된 부산 이전 문제는 이 같이 해소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산은은 그간 지지부진했던 매각건이나 새롭게 추진되는 현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최대 해운 선사인 HMM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함께 산은이 대주주로 있는 상황에서 매각이 추진돼왔지만 인수 기업을 찾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인수 후보인 대한항공은 해운 경험이 있으나 인수 여력이 사실상 부족하다. 포스코그룹은 산은 지분 인수를 고려 중이나 해운 경험이 없는 게 걸림돌이다.
KDB생명보험은 여전히 자본잠식 문제에 빠져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은은 KDB생명을 매각하고자 매번 시도했지만 낮은 자본건전성이 위협요인으로 지목되며 불발됐다. KDB생명 김병철 수석부사장이 지난 3월 부임한 후 수익성이 높은 제3보험(보장성보험)을 공략하며 체질 개선을 도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인수 매력이 부각되진 못하고 있다.
해묵은 매각 과제 이외에도 산은은 새 정부를 맞아 새로운 대업도 부여받았다. 약 75억원에 달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일이다. 현재 정부 핵심 산업으로 5년간 150조원 규모가 투입되는 국민상장펀드에서 첨단전략산업기금은 한 축을 맡고 있다.
산은은 해당 기금을 운영하면서 기금채 이자 등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자금을 출연하고 민간‧금융기관‧국민자금보다 먼저 위험을 부담하거나 마중물로 참여해 민간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지난 9일 공포됐으며 오는 12월 초에 출범한다. 산은은 금융위와 함께 관계부처 등과 협업하며 첨단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이행하는 데에 집중할 전망이다.
산은 관계자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HMM이나 KDB생명은 앞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정도의 논조이나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이다”라며 “국민성장펀드는 앞으로의 성장 동력인 만큼 첨단산업 육성에 방점을 찍고 정부에서도 강하게 추진하는 사안이다 보니 관심 가지고 집중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하영 기자 hyy@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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