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끝나면 수확의 계절이 온다. 뿌린 것 없이 수확을 기대하긴 어렵다. 법률시장은 어떤가. 옛날엔 평생을 통틀어 소송 등 법률 분쟁을 경험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고소고발로 수사기관을 드나들거나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채권채무, 임대차, 손해배상 등 민사재판에 시달린다. 마음고생은 덤이다. 법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존재양식의 탐구’, ‘법의 제조’ 등의 저술을 남긴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생각을 보자. 법은 갈등하고 이탈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제도를 다시 연결한다. 느슨하지만 분산되지 않게 공동체를 지키고 활력을 유지한다. 법은 반복적으로 시행되면서 형식과 위상이 강화된다. 종교처럼 강력하진 않지만 국민을 구속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자본주의는 이성과 과학을 수단으로 인공지능 등 디지털 세상으로 나아간다. 기존의 이해관계는 급변하고 복잡해져 갈등을 빚고 분쟁을 일으킨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법의 제정, 개정, 폐기가 빈번하면서 법의 위상이 흔들린다. 국회 의결 등 요건을 갖추지만 법의 가치는 훼손되고 공정성이 흔들린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권력기관조차 법 위반과 악용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바야흐로 법치주의의 위기가 오고 있다.
처음 법학교육이 등장한 후로 대학은 법학을 연구하고 정부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배출했다. 법학교육은 법의 근본원리에 더해 타당성, 당위성, 가치와 한계를 논했다. 법률실무는 구체적 분쟁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됐고 2025년 5월 기준 변호사만 4만명을 넘어선다. 판검사를 합치면 5만명에 이른다. 실무 중심으로 법학교육이 발전하면서 법의 본질과 원리 탐구 등 법학 연구가 정체되고 있다. 정치에선 정적 제거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법을 악용한다. 법학자, 변호사만 아니라 일부 판검사마저 법률기술을 창안해 편을 가른다. 경제에서도 시장 우위 및 경쟁 기업을 제거하기 위해 규제기관 제소와 형사 고소고발 등 분쟁 절차를 남용하고 있다. 정치적 타협과 건전한 경쟁은 뒷전이다.
법학의 고민과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 법률실무도 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빈틈이나 논리를 찾아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의 근본적인 목적이나 본질, 원리를 먼저 찾아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법술전문대학원이 될 순 없다. 법과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정치권과 기업에 줄을 대고 해외 사례, 입법례를 끌어들여 입맛에 맞는 논리를 만든다. 법학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을까.
도덕은 타인의 자유를 위해 나의 자유를 줄이는 미덕이고 법은 타인의 자유와 나의 자유의 경계를 짓는 일이다. 법률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투르는 근대인을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현대 법률가에게 적용해도 틀리지 않다. 법학자 오토 마이어는 확고한 법 이념 없이 법의 통일적, 체계적 해석과 집행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로스코 파운드는 뭐라고 했을까. 법은 안정돼야 하지만 정지해선 안 된다고 했다. 법학자와 실무자 간 지루한 갈등을 끝내야 한다. 법치주의의 근본을 세운다는 목표로 법학의 공동연구와 제도 개선 등 법학 발전에 나서야 한다. 법학이 바로 서야 법치가 바로 서고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 그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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