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이 있는 집 앞을 지나며 그리운 사람에게, 고향의 부모 형제에게 손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시절을 소환했다. 언덕 위 주택가를 지나다 보면 ‘그 집 앞’이라는 가곡이 떠오른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이던 시절, 대문은 그 집과 거주하는 사람까지도 그려지는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 노라면’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장롱 속의 옷처럼 빠른 시대상에 갇혔다.
학창 시절 윗마을 여학생이 내 앞에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일부러 다리를 꼬며 막아서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도저히 앞지를 용기가 없었다. 긴 들판 중간쯤에 논두렁길이 나오자 나는 빠르게 질러가다가 그만 미끄러져 논에 빠지고 말았다. 이튿날 여학생의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교회를 함께 다니는 친구가 다가와 묘한 웃음을 날렸다.
그림 하나 그려 달라는 말을 하려 했다며, 도망친 나의 심약함을 조롱하는 듯했다. 세월이 지금까지 흘렀다. 그 여학생의 집 앞이 꿈속에서 수십번 지나갔던 ‘그 집 앞’이었음을 알 것 같다. 요즘의 우체통엔 세금 고지서, 공과금 납부 통지서 등이 대부분이다. 남자로서의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인생의 절기가 오고 있다. 하지만 빨간 우체통에 그리움과 설렘을 전할 수는 없어도 그대를 향한 마음의 편지는 아직 긴 밤을 오가고 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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