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제2회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개최했다.
K리그 명예의 전당은 2023년 프로축구 역사와 전통을 기리고 K리그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의 공헌을 알리기 위해 신설됐다. △선수 △지도자 △공헌자 3개 부문으로 운영되며, 2년마다 헌액자를 선정한다.
선정 기준은 K리그에서 주요 성과를 기록한 선수 231명 대상으로 선정위원회 내부 심사를 통해 최종 후보 20명 선정했다. 이후 위원회(40%), 구단(20%), 기자단(20%), 팬(20%) 투표를 거쳐 4명의 헌액자 결정했다. 지도자와 공헌자 부문은 선정위원회 내부 토론을 거쳐 선정했다.
올해는 선수 부문에 김주성, 김병지, 故 유상철, 데얀이 선정됐다. 지도자 부문에는 김호 전 수원 삼성 감독, 공헌자 부문에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는 “한국 축구의 큰 별을 한자리에 모시게 돼 영광”이라며 “K리그 명예의 전당은 많은 축구인의 귀감이 되고 한국 축구 미래를 밝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6명의 헌액자 이름은 K리그 역사이며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모두가 헌액자의 업적을 되새기고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전했다.
|
이번에 헌액자로 선정된 故 유상철은 1998년에는 K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김주성에 이어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각각 세 포지션에서 모두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두 번째 선수가 됐다. 유상철은 K리그 통산 144경기에서 38골 9도움을 기록했고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다. 2005년 다시 울산으로 복귀해 이듬해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감독을 맡아 지도자로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이어갔다. 특히 인천 사령탑 시절에는 암 투병 중에도 끝까지 현장을 지키며 많은 울림을 남겼다. 유상철은 2021년 영면 후에도 한국 축구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인천 사령탑 시절 제자로 함께했던 김호남 K리그 어시스트 이사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멀티 플레이어였다”며 “한국 축구의 힘과 근성을 상징했고 ‘저 선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故 유상철의 아들 유선우 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며 “이 상은 개인이 아닌 아버지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함께 나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데얀은 2007년 인천을 통해 K리그에 입성한 데얀은 이후 서울, 수원 삼성, 대구FC 등 K리그에서만 총 12년간 활약했다.
데얀은 K리그 통산(리그컵 포함) 380경기 198골 48도움을 기록하며 최전방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 공격수 부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고, 2012년에는 K리그 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K리그 최고 골잡이 데얀은 이동국(228골)에 이어 K리그 통산 득점 2위를 기록했다.
데얀의 추천자로는 이동국 용인FC 테크니컬 디렉터가 나섰다. 이동국은 “같은 시기에 데얀과 활동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다”며 “움직임, 위치 선정, 마무리까지 갖춘 완벽한 공격수”라고 소개했다.
그는 “데얀은 K리그에서 뛴 12시즌 중 10시즌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며 “득점왕 3회, K리그 최우수선수(MVP)도 대단하지만, 기복 없이 꾸준히 활약한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데얀은 “2007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수많은 득점, 기록, 우승을 할 줄 몰랐다”며 “함께 해준 동료, 지도자와 무엇보다 가장 큰 지지를 보내준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
세 번째 헌액자인 김병지 강원FC 대표이사는 1992년 현대 호랑이에서 데뷔 후 24년간 K리그에서 활약한 레전드 골키퍼다. 컵대회를 포함해 K리그 통산 708경기에 출전해 무실점 경기 229회를 기록했다. 또 골키퍼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현역 시절 3골을 넣으며 ‘골 넣는 골키퍼’라는 별명을 얻었다.
울산(1996· 1998년), 포항 스틸러스(2005년), FC서울(2007년) 소속으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총 4회 선정됐다. 김병지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K리그 무대를 지켰으며, 경기장 안팎에서 한국 축구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추천인으로 나선 현영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현역 시절 체중이 78kg에서 한 번도 변동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질 정도로 자기 관리와 생활 태도가 철저했다”며 “‘꽁지 머리’, ‘골 넣는 골키퍼’ 등의 개성은 후배 선수들이 또 하나 배워야 할 점”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지는 “치열했던 경쟁 속에 멋진 모습도 참 많았다”며 “며칠 전 세 아이와 함께 조기축구를 뛰었는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라고 웃었다. 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선수 생활을 포기하는 후배들이 많은데 포기는 실패”라며 “행정가 등 여러 길이 있으니 도전하면 좋겠다. 나 역시 인재를 찾아다니겠다”고 밝혔다.
|
마지막 선수 부문 수상자 김주성은 1987년 데뷔 시즌 베스트 일레븐 공격수 부문 선정을 시작으로 1991년 미드필더 부문에 뽑혔고 1996년과 1997년, 1999년에는 수비수 부문에서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1997년 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등극했고 부산 대우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국내외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주성의 추천인으로 나선 최순호 수원FC 단장은 “오랜 시간 수많은 걸출한 선수가 탄생하고 사라지는 걸 봐왔다”며 “김주성은 한국 축구사에 다시 보기 힘든 최고의 공격수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격이 크진 않았으나 남다른 센스와 지능을 지녔다”며 “김주성처럼 ‘야생마’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주성은 “많은 시상식에 참여했지만 이렇게 가슴 뭉클한 건 없었다”며 “험난한 길을 함께했던 동료와 지도자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K리그가 감동과 스토리가 있는 리그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