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모처럼 축구계 공식석상에 등장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KFA) 명예회장이 한국축구에 대한 일침을 날렸다.
16일 서울 신문로의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제2회 K리그 명예의전당 헌액식'이 개최됐다. 명예의전당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프로축구 역사와 전통을 기리고, K리그 발전에 기여한 인물의 공헌을 알리기 위해 2023년 신설했다. 선수, 지도자, 공헌자 3개 부문으로 2년 마다 헌액자를 선정한다.
제2회인 이번 헌액자는 선수 부문에 김주성, 김병지, 故유상철, 데얀, 지도자 부문에 김호 전 수원삼성 감독, 공헌자 부문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23년 초대 명예의전당에서는 최순호, 홍명보, 신태용, 이동국, 김정남 전 감독,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헌액된 바 있다.
요즘 보기 힘든 축구계 전설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특히 정 명예회장이 축구 관련 공식성상에서 마이크를 잡는 건 오랜만이다. 행사 장소로 쓰인 아산정책연구원은 정 명예회장이 선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호를 따 만든 일종의 싱크탱크다. 그의 안방에서 열린 행사인만큼 직접 모습을 보였다.
헌액증서와 트로피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축구를 사랑하는 여러분 반갑다”며 “우리나라 축구는 프로축구를 포함해 지난 30년 동안 많은 발전을 했다. 여기에 계신 축구를 사랑하는 분들, 축구 지도자들 덕분이다”라고 덕담처럼 소감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어진 긴 발언은 대부분 쓴소리였다. “오늘 좋은 상을 받으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선수와 지도자들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먼저 경기력 문제를 지적했다.
“얼마전에 미국에서 미국, 멕시코와 평가전을 했는데 우리나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3위라고 한다. 맞나? 그런데 일본은 18위라고 한다(실제로는 17위). 생각해보면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때 4강까지는 갔고 일본은 16강에 갔다. 우리 축구실력이 이것보다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구인들이 더 분발해주시기 바란다”라며 FIFA 랭킹이 일본보다는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더 길게 이야기한 건 축구 행정에 대한 지적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또 하나는 축구 행정하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제가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할 수 있게 된 것도 당시 FIFA 부회장에 당선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당선된 뒤에 축구인 분들에게 물어봤다. 내가 할 일이 뭐냐고. 그랬더니 아무래도 한국 대표로 바깥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FIFA 부회장 선거는 힘들 거라고 했지만, 저는 11표, 2등과 단 한 표 차이로 당선이 된 바 있다”며 해외 단체에서 직함을 달고 축구외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종의 무용담처럼 “아시아는 권역으로 크게 보면 4개 권역이 있다. 중동, 서남아시아, 아세안, 그리고 극동이다. 선거에 나가면 우선 자기 동네에서 표가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가 속한 극동은 여러분 아시는 일본 북한 중국이 있다. 그 나라들이 우릴 찍어주진 않을 것 같더라. 그래서 어디서 표를 구해와야 하나 고민하면서 어렵게 부탁하고 다녔더니 11표가 나왔다. 그래서 FIFA에 가 보니까 집행위원이 21명 있고 주앙 아발란제 회장, 그 아래 제프 블래터 사무총장이 있었다. 당시 FIFA는 당연히 월드컵을 일본에서 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안 된다, 실력으로 치면 우리 본선을 다섯 번 나갔는데 일본은 못 나갔다. 일본이 경제력에서 좀 앞선다고 거기서 월드컵을 개최한다면 그건 입시를 할 때 공부 잘 하는 학생을 뽑지 않고 돈이 많은 학생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다 해서 결국 공동개최를 이뤘다”며 월드컵 공동개최를 만들어 낸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이 구체적인 지적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쳤지만, 사실상 현재 한국의 축구 외교 역량을 지적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정 명예회장 이후 긴 시간 동안 축구회장을 맡은 4선 정몽규 회장에 대한 지적으로도 볼 수 있다. 정몽규 회장은 매 당선마다 축구 외교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각종 선거 및 유치전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축구의 시대’에서 중동 카르텔에 밀려 자신은 아시아축구연맹 속 야당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점 역시 정 명예회장은 어떻게든 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례로 반박한 꼴이 됐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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