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갯벌에 고립된 중국인을 구조하려다 순직한 해양경찰 故이재석 경사의 동료들이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사건과 관련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 경사가 순직하는 과정에서 '2인 1조 순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무전 보고 후 30분이나 구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해당 사건에 대해 독립된 외부기관에서 엄정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김용진 해경청장은 이 대통령 지시가 공개된 후 "무건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진실규명을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영웅 만들어야 하니 사건 함구하라" vs "은폐 시도, 사실무근"
갯벌에 고립된 70대 중국인을 구조하다가 숨진 해양 경찰관 故이재석 경사의 동료들이 "상부의 늦장 대응과 규정 위반이 사고를 키웠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에서 이 경사와 함께 사고 당시 당직을 섰던 동료 4명은 15일 인천 동구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흥파출소장으로부터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사건과 관련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파출소장이 처음 함구를 지시한 것은 실종된 이 경사가 구조된 뒤 응급실로 이송 중이던 때"라며 "파출소장이 저희 팀원과 수색으로 비상 소집된 다른 팀원들을 불러 서장 지시사항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인천해경서장도 이들에게 '함구'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당직을 섰던 한 팀원은 "이 경사 지인을 만나자 인천해경서장과 파출소장이 '어떤 사이냐'고 물은 뒤 '유족들한테 어떠한 얘기도 하지 말아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추후 조사 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려고 마음먹었으나 어제 유족들과 면담을 통해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고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윗선'에서 신속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순직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저희 해경은 순찰을 2인 1조 하게 돼 있고, 심지어 식사를 하러 가거나 편의점 이동 때도 혼자 이동하는 경우가 없다"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해양경찰청은 "그동안 유족에게 폐쇄회로(CC)TV, 무전 녹취록, 드론 영상 등 사고 관련 현시점에서 가능한 관련 자료 일체를 제공했다"며 "인천해경서장과 파출소장이 내부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으나 서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광진 인천해경서장은 이후 별도 입장문을 내고 "진실 은폐는 전혀 없었다"며 "진상조사단 등의 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모든 실체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2인 1조 순찰' 규정 위반…최초 보고 후 30분간 구조 조치 없어
하지만 14일 해양경찰이 공개한 순찰 드론 영상을 보면 이 경사를 구조하기 위한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 따른다.
이 경사는 지난 11일 오전 2시 54분쯤 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 고립된 중국 국적의 70대 A씨를 발견했다. 발을 다쳐 거동이 불편한 A씨를 업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대신 자신이 착용하던 구명조끼를 벗어 건넨 후 손을 잡고 육지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로부터 10분도 되지 않은 오전 3시2분쯤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던 물이 불과 몇 분 만에 턱밑까지 치솟았다. 거센 물살에 이 경사는 A씨의 손을 놓친다.
이 경사의 생전 마지막 모습은 오전 3시27분쯤 촬영된 영상에 담겼다. 그는 무전기와 랜턴을 양손에 쥔 채 발버둥쳤으나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인천해양경찰서 상황실이 실종 보고를 접수한 것은 오전 3시30분이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중부해경청에 항공기 투입을 요청하고 함정과 구조대가 현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이 경사가 A씨를 발견하기 전인 오전 2시43분에 파출소 당직 팀장에게 "물이 차오르고 있어 추가 인원 투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장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어 이 경사는 오전 2시56분에도 "구조자가 발을 다쳐 거동이 어렵다. 구명조끼를 벗어드렸고 물은 허리 정도까지 차오르고 있다"고 재차 알렸으나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이 때라도 긴급 출동을 했다면 이 경사를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영흥파출소는 사고 당일 이 경사가 현장에 출동한 지 80여분 만인 오전 3시 30분에야 상급 기관으로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파출소는 2인 출동이라는 내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이는 앞서 이 경사의 동료들도 언급한 점이다. 또한, 해당 파출소는 직원들에게 규정보다 많은 휴게시간을 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파출소 당직자는 모두 6명이었으나 순직한 이 경사와 당직 팀장 등 2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이 경사는 다른 동료 4명이 쉬고 있는 사이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드론 순찰 업체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혼자서 출동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해양경찰청 훈령인 '파출소 및 출장소 운영 규칙'은 이들과 같은 3교대 근무와 관련해 "(근무) 8시간당 휴게 1시간을 줄 수 있고 야간 3시간 이내 사용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해당 규칙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당직 근무 때는 휴게시간이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2인 1조 순찰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직 근무자 6명 중 당직 팀장을 제외한 5명이 5시간가량 동일 시간대에 휴식을 취하면 2인 1조 순찰이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관련 내용을 신고한 드론 순찰업체조차 "올해 (신고에 따른) 구조 출동으로 혼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추가 지원이 없어 다시 신고하기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李 대통령 "독립 기관에서 엄정 조사하라"
김용진 해경청장, 해경 순직 관련 사의 표명…"무거운 책임감"
이처럼 해경의 대응에 의문이 제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사고 경위와 관련해 "해경이 아닌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에 맡겨 엄정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고인의 동료들로부터 '윗선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는 점을 짚었고, 이어 유가족과 동료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런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2인 1조로 수색 및 구조 작업을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고인은 혼자 구조를 진행했다는 보고를 들은 뒤 초동대처에 있어 미흡한 점이나 늑장 대응이 없었는지를 거듭 확인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가 있자 김용진 해양경찰청장은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김 청장은 공식 입장을 통해 "순직 해경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님의 말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 사건의 진실규명과 새로운 해양경찰에 도움이 되고자 사의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중부해경청은 이 경사 순직 사고와 관련해 사고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했던 진상조사단 활동도 중단했다.
해경청은 전날 이재명 대통령이 순직 사고와 관련해 "해경이 아닌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에 맡겨 엄정히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지난 13일 자체적으로 구성한 조사단은 운영하지 않고 대기하기로 했다.
진상조사단은 해양안전협회장이 단장을 맡았고, 인천경찰청·인천소방본부 관계자, 법률전문가, 대학교수, 해양재난구조대원으로 구성된 상태였다.
해경청 관계자는 "일단 진상조사단은 운영하지 않고 대기하기로 했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기관에서 조사를 맡을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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