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정부가 대미 관세·투자 협상에서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를 전면에 내세웠다. 단순한 유동성 확보를 넘어 3500억달러(약 485조원)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가 불러올 환율·금융 불안을 ‘한시 스와프 확보, 투자 집행 분산, 국내 달러 조달 인프라 강화’라는 3중 관리 전략이다. 실현 가능성보다는 협상 압박과 금융시장 안정의 상징성에 방점이 찍힌 카드로 평가된다.
◇한시성·분산·국내 조달, 세 겹의 관리 전략
미국의 현금 직접투자 비중 확대 요구로 한국 기업들은 수년간 3500억달러의 현금 집행을 앞두고 있다. 투자 시점이 집중되면 원·달러 환율 급등, 은행 유동성 경색, 외화 조달 비용 급증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단기 대규모 스와프를 선제 확보해 달러 수요를 흡수하고, 연간 200억달러 수준으로 투자 속도를 조절하며 헤지 전략을 병행한다. 아울러 외평채·은행 간 스와프·외화예금 등 국내 달러 공급 경로를 확충해 충격을 분산한다는 방침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스와프 없이 3500억달러를 단기간 집행하면 IMF 외환위기급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세 가지 대응책을 유기적으로 묶어야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300억달러, 2020년 600억달러 한시 스와프가 각각 환율을 20% 이상, 150원가량 낮춘 전례도 있다. 다만 “향후 5년 내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 세 겹의 관리 전략만으로는 급격한 달러 수요와 장기 금리 변동성 확대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상 압박용 ‘무제한’ 카드와 정치·동맹 변수
연준이 상설·무제한 스와프를 맺은 국가는 ECB·BOJ·BOE·BOC·SNB 등 5곳에 한정돼 있고 원화의 국제 사용 빈도도 낮다. 시장이 한미 간 상설·무제한 스와프 체결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가 ‘무제한’을 앞세운 것은 협상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한국 자본의 대규모 유입을 통해 자국 내 투자·고용 확대, 대중 견제, 동맹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외환 담당 부행장은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미 대선 국면과 글로벌 금융 불안이 맞물리면 협상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전망과 유동성 압박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단기 위기 대응용 한시 스와프는 과거처럼 필요 시 체결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상설·무제한 스와프는 달러 패권을 지탱하는 안전자산 통화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미 재무부·연준이 달러 유출 확대를 부담으로 인식할 경우 성사되기 어렵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8월 말 4163억달러로 2021년 고점 4692억달러를 밑돌고 있다. 미국의 현금 직접투자 비중 확대 요구로 단기 달러 조달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스와프의 범위와 형태는 한국 경제의 달러 수급 안정성과 직결된다. 홍성국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국내 은행과 기업이 달러를 대거 확보하면 원화 자금시장이 위축돼 장기금리 상승과 투자 위축이 뒤따를 수 있다”며 투자 속도·조달 방식의 정교한 설계를 주문했다.
◇금융시장 안정 전략의 의미와 한계
무제한 스와프는 단순 유동성 수단을 넘어 대미 투자 협상의 레버리지이자 금융시장 안정의 심리적 방파제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충분한 한시선 확보, 투자 집행의 단계적 분산, 국내 달러 조달 인프라 강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3500억달러 투자와 환율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재현이나 달러 패권의 급격한 변동이 닥치면 이 전략만으로는 근본적 방어가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이번 ‘무제한’ 제안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낮지만, 한미 통화스와프의 조건과 시점을 둘러싼 협상은 한국의 대외 투자와 금융 안정의 핵심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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