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구금 사태로, 국내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규모가 작은 협력사들은 또다시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인력난과 부대비용 손실 등으로 대기업보다 더 큰 타격을 그대로 맞게 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전까진 양국 경제 협력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구금 사태로 인해 조지아 합작공장 건설 일정이 최소 2~3개월 이상 지연될 전망이다. 이 공장에는 양사로부터 약 63억달러(한화 약 8조8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곳 외에도 미국 애리조나, 미시간, 오하이오 등 여러 지역에 공장 신설을 진행 중이며, 삼성SDI와 SK온 등 다른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구금 사태와 비자 문제로 인해 출장 중단, 인력 재조정 등 긴급 조치가 잇따르고 있으며, 중장기 대미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 반미 감정도 일어나고 있다.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수갑과 족쇄를 찬 모습이 이민세관단속국(ICE) 홈페이지에 공개되면서, 한국 내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반미 감정이 확산되는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테슬라 계약 취소 인증 같은 불매운동 움직임도 보이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간 내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미국 내 기존 공장 인력을 재조정하거나 멕시코, 캐나다 등 대체 투자 거점을 검토하는 등 투자 다변화 전략을 모색 중이라고 알려졌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 역시 미국 내 사업 추진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특수한 사유로 인해 사업장 위치 변경이나 투자 지연 등이 생기면, 이는 그대로 추가적인 인력과 운영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와 같은 미국 내 노동 규제 강화, 비자 제한 같은 환경 변화는 중소기업의 노동력 확보와 유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 대비 협상력이 약해 이러한 비용 증가와 규제 압박을 감내하기 어렵고, 이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저하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이번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신속히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 방안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대미 투자를 보류하거나 투자 규모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의 기술 인력 부족과 비자 문제, 현지 여론과 반미 감정 등 복합적인 변수가 대규모 투자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전동화,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 시장 진출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정책과 여건이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면서, 한국 기업들은 대미 투자 전략을 더 신중하고 소극적인 반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체포, 구금된 한국인 중 우리 본사 임직원은 없으나, 귀국 지원에 협력하고 있다. HL-GA 배터리공장의 경우 LG엔솔이 주도하고 있어, 이번 구금 사태 마무리도 LG엔솔 중심으로 이뤄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SK온이 현대차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의 대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미국 국무부의 외교업무매뉴얼에 따라 단기 상용 비자(B-1) 소지자에 대해 정상 근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자사 공장에 미국 출장 인력을 재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사태로 주요 기업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SK온은 한미 간 사태 해결 의지와 현대차와의 협력 필요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이민당국은 지난 4일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단속을 벌여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을 포함해 총 475명을 체포, 구금했다. 체포된 한국인 노동자들은 구금시설에서 7~8일간 억류된 뒤, 한국 정부와의 협조를 통해 전세기를 이용해 12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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