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에는 오랜 전통의 유행어가 있다. 바로 ‘돌돌젠티’다. 해외 축구의 ‘엘 클라시코’에 빗대 LCK 팬들이 만든 '롤클라시코'와 비슷한 일종의 밈으로, 결승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젠지와 T1의 구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롤클라시코’가 리그의 간판 대진을 의미한다면, ‘돌돌젠티’는 승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두 팀이 최종 무대에서 다시 만나는 흐름을 풍자하는 동시에, 그만큼 두 팀이 쌓아온 전력을 보여주는 별칭이었다. 긍정적으로는 LCK의 간판 카드라 불렸지만, 부정적으로는 “또 너희야?”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식상하다는 평가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2025 LCK 서머 플레이오프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젠지와 T1이 모두 승자조 2라운드에서 패배하며 패자조로 밀려난 것이다. ‘돌돌젠티’가 승자조 결승이 아닌 패자조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결승 무대에서만 맞붙어온 두 팀의 관계를 생각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LoL 파크에서 열린 2라운드 첫 경기에서 정규리그 4위 kt 롤스터는 1위 젠지를 세트 스코어 3대2로 꺾었다. kt는 풀세트 접전 끝에 정글러 ‘커즈’ 문우찬이 과감한 플레이로 주도권을 쥐었고, 미드라이너 ‘비디디’ 곽보성과의 호흡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빛나며 끝내 젠지를 무너뜨렸다. 국제무대에서 MSI, EWC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고 정규리그에서는 단 1패만 기록하며 압도적 '1황'으로 평가받던 젠지는 예상치 못한 패배로 패자조행이 확정됐다.
이어 14일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2위 한화생명e스포츠가 3위 T1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3대0 완승을 거뒀다. 작년 서머 결승에서 맞붙었던 두 팀의 리턴 매치였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팽팽한 승부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한화는 원딜러 ‘바이퍼’ 박도현을 전면에 내세운 초반 압박 전략을 세 경기 내내 성공시키며 T1을 몰아붙였다. 특히 세트마다 초반 교전에서 만들어낸 격차를 바탕으로 주도권을 잃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kt와 한화생명은 이번 승리로 월드 챔피언십 진출을 확정지었고, 오는 20일 결승 진출권을 놓고 맞붙는다. 반면 패배한 두 팀의 운명은 복잡해졌다. T1은 패자조에서 대기하다 디플러스 기아와 BNK 피어엑스 경기 승자와 맞붙게 된다. 여기서 승리하면 이후 kt에 패한 젠지와 맞서야 한다. 결국 두 팀이 계속 살아남는다면 ‘돌돌젠티’가 패자조에서 재현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팬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유튜브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돌돌젠티(패자조)네”, “네가 돌면 나도 돈다”, “감히 나보다 먼저 돌아? 그럼 같이 도는 거지” 같은 댓글이 잇따르며 이번 상황을 새로운 밈으로 소비하고 있다. 기존에는 결승 무대에서만 반복되던 ‘돌돌젠티’가 이제 패자조라는 낯선 무대에서 탄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팬들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강팀으로 꼽히던 젠지와 T1이 나란히 흔들리면서 “절대 강자” 구도에 균열이 생겼고, kt와 한화생명은 이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돌돌젠티’라는 표현은 다시 한번 진화하며, LCK의 가을 무대에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을 남기게 될 전망이다.
Copyright ⓒ 게임와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