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계약은 어반베이스에 회생 절차가 개시되는 경우 신한캐피탈이 어반베이스 또는 대표 개인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했는데, 회생절차 개시결정이 있었으므로 투자계약 문언에 따라 신한캐피탈은 어반베이스 대표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주식매수청구권 조항을 무효로 보아야 한다거나 설령 유효하다고 보더라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피고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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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경영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어려워진 경우 대표 개인에게 결과책임을 추궁해 사실상 투자금을 보전하는 행위를 지양하려는 정책적 방향성은 있어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3년 4월 고시 개정을 통해 벤처투자회사와 벤처투자조합이 피투자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의무를 제3자가 연대하여 부담하게 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특정한 사유가 있고 그 제3자가 사유 발생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연대책임의 부과를 허용하는 행위제한을 신설하였다. 신기술금융회사로서 고유계정(본계정)으로 어반베이스에 투자한 신한캐피탈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현재 대부분의 벤처투자를 수행하고 있는 벤처투자조합과 벤처투자회사에는 이 행위제한이 적용된다.
◇연대책임 금지 규정의 허점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제한은 앞으로 벤처투자조합과 벤처투자회사가 대표 개인에 신한캐피탈과 비슷한 청구를 하는 것을 막기에 충분할까? 예측하기 조심스럽지만, 법적인 관점에서는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
행위제한은 제3자(주로 회사의 대표가 되므로 이하 편의상 ‘대표자’)에 대한 연대책임을 금지한다. 그런데 업계가 본질적으로 금지하고자 하는 상황이 ‘연대책임’이 맞는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법적 의미에서 ‘연대’채무란 다수의 당사자가 동일한 채무를 각자 전부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채무자 1인의 이행으로 다른 채무자도 그 의무를 면하게 되는 채무를 의미한다. 그동안의 투자계약이 투자자의 피투자회사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을 규정하며 대표자에게도 연대책임을 부과하여 왔던 것은 사실이고, 연대책임을 금지하는 중소벤처기업부 고시는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만약, 피투자회사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조항은 아예 두지 않고, 대표자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조항만 둔 투자계약이라면 어떨까? 실제로 피투자회사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은 자기주식 취득에 대한 상법상 제한으로 인해 어차피 활용가능성이 낮다(경영이 어려워졌다면 이미 배당가능이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굳이 피투자회사와 대표자에 연대하여 주식매수청구권에 응하도록 하기보다는, 대표자 개인만을 의무자로 하여 ‘회사에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응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려는 투자자도 나타날 수 있다. 대표자 개인에만 부과하는 책임은 법적 의미에서 연대책임이 아니므로 행위제한 위반 없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고의·중과실’ 기준의 모호성
마찬가지로, ‘고의 또는 중과실’이라는 개념으로 업계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바가 달성되는지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위제한은 특정 사유 발생에 대한 대표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대표자에 책임 부과를 허용한다. ‘고의 또는 중과실’은 대표자가 단순한 과실이나 가벼운 부주의로 과도하게 무거운 책임을 부담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법적 의미에서 ‘고의’란 원칙적으로 ‘결과를 알고 행위한다는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과가 위법하다는 인식까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결과적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대부분 주주의 동의를 받아 그에 따라 이해관계인이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해서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에 대한 대표자의 고의는 있다는 주장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한다는 인식과 의사는 있었기 때문이다.
어반베이스 사건에서 대표자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부당하다고 업계가 느끼는 본질적 이유는 회생신청에 대한 대표자의 ‘고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러한 회생신청에 ‘비난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성실한 경영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회생절차 개시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고 대다수 주주의 찬성까지 얻었음에도, 대표자의 회생신청에 ‘고의’가 있다는 이유로 책임 부과가 허용된다고 결론내린다면 이는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이상과 같은 ‘연대’, ‘고의 또는 중과실’ 개념에 대한 해석은 법률적 의미에서 접근한 것이다. 만약 중소벤처기업부나 법원이 ‘연대’, ‘고의 또는 중과실’을 그보다 넓은 일상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위와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즉, ‘회사가 부담하여야 하는 의무를 이해관계인에 연대하여 부담’시키는 행위를, ‘당위적으로 회사에 귀속되어야 할 위험과 책임’을 이해관계인에게 ‘사실상’ 부담시키는 행위로 일상적 관점에 따라 넓게 해석한다면, 이해관계인에 단독으로 책임을 부과하는 경우에도 구체적 사유에 따라 행위제한 위반이라는 판단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가령 회사의 파산은 기본적으로 회사에 내재한 위험이므로, 이에 관해 이해관계인에 책임을 부과하는 행위제한 위반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고의 또는 중과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부 행정법규가 고의, 과실을 넓은 의미에서의 비난가능성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하듯 이를 비난가능성과 유사하게 해석한다면, 이해관계인에 고의가 있지만 투자위험의 본질상 이해관계인을 비난하기 어려운 경우 책임 추궁이 제한될 수도 있겠다.
◇투자계약 정교화의 필요성
다만 위와 같은, 일상적 의미에 따른 넓은 해석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결국 법률적 의미에 따른 원칙적 해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투자계약 문언을 정교하게 다듬어 두어야 한다.
만약 투자자와 스타트업 모두가 실로 비난가능성 있는 상황에만 이해관계인에 책임을 추궁하는 구조에 동의했다면, 이를 정확히 반영한 투자계약 작성을 위해 전문가의 면밀한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반베이스 판결이 보여주듯, 계약 문언상 존재하는 권리라면 그것이 업계의 통념과 다소 다른 경우에도 권리자는 언제나 이를 행사할 수 있고, 법원도 그런 권리행사를 쉽사리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심건욱 변호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세종 변호사 △(현)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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