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선수들의 현역 시절 특기가 그대로 나올 때 관중은 더욱 열광했다.
14일 서울 마포구의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2025 아이콘매치: 창의 귀환, 반격의 서막’의 본경기가 열렸다. 수비수팀 실드유나이티드가 공격수팀 FC스피어에 2-1로 승리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올해 아이콘매치는 앞선 13일 다양한 미니 게임으로 구성된 이벤트 매치를 진행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거대 올스타전이 성사된 건 ‘FC온라인’과 ‘FC모바일’ 두 온라인 축구 게임을 서비스하는 넥슨이 이용자들이 실제 축구에도 높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게임 속에 등장하는 선수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가능해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작년보다 풍성해진 이벤트 매치는 스피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지난해보다 올해 경기가 더 팽팽했다. 지난해는 출신이 공격수인데다 은퇴한지 한참 된 스피어 수비진이 숭숭 뚫렸고, 실드가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반면 올해는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스티븐 제라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구자철 등이 스피어에 대거 합류해 후방을 안정적으로 지켰다. 만원에 가까운 관중 64,855명이 이 모습을 감상했다.
경기 초반 웨인 루니가 ‘루화백’이라는 한국식 별명대로 정교한 롱 패스를 상대 진영에 배달하면서 탄성을 이끌어 냈다. 호나우지뉴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긴 했지만 멋진 공격이었다.
루니의 득점부터 그의 특기 중 하나인 흘러나오는 공 냅다 차기에서 비롯됐다. 경합에서 옆으로 흘러나오는 공을 루니가 중거리 슛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많은 선방을 보여준 이케르 카시야스 골키퍼도 살짝 휘어지면서 골문 구석에 꽂히는 루니의 킥을 막지 못했다.
센터백으로 출전한 스티브 제라드의 롱 패스도 볼거리였다. 측면으로 찢어주는 패스는 정확하게 측면의 가레스 베일을 향했다.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의 머리에 정확한 패스를 찍어 차 연결하기도 했다.
제라드 하면 투지다. 제라드는 수비수로서 과감한 슬라이딩 태클로 마이콘의 돌파를 저지하고, 코너킥 수비 때 들어가기 직전인 공을 몸 날려 걷어내는 플레이로 후방을 지켰다.
앙리는 현역 시절 특기 중 하나인 한발로 공을 띄우고 다른 발로 차는 기술을 선보였다. 수비를 등진 상태에서 크로스를 하기 위해 보여준 재치 있는 동작이었고, 카카가 시저스킥으로 받으면서 멋진 장면에 동참했다.
전날 이벤트 매치부터 컨디션이 좋다는 걸 보여준 잔루이지 부폰은 가장 현역 시절에 가까운 선수였다. 슛을 방어할 뿐 아니라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패스를 끊어내는 플레이까지 해냈다.
카카는 공을 툭 쳐놓고 압도적인 가속력으로 수비를 돌파하는 플레이, 일명 ‘치달’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선수다. 카카는 한창때보다 많이 느려졌지만 수비수 역시 느려졌기 때문에 치달이 통했다. 카카는 후반전에 특유의 킥 폼으로 멋진 중거리 슛도 날렸는데 이케르 카시야스의 환상적인 선방에 저지 당했다.
리오 퍼디난드도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자주 보여준 모습을 재현했는데, 수비를 지휘하는 모습이었다. 퍼디난드의 불호령이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것도 관중들에겐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였다.
슬슬 걸어 다니고 있던 호나우지뉴는 처음 위협적인 공격을 했을 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따돌렸고, 퍼디난드가 커버하러 오자 로빙슛 마무리까지 시도했다. 이 돌파를 따라가지 못한 네스타가 근육 부상으로 빠졌다. 그 뒤에도 호나우지뉴가 속도를 붙여 들어갈 때 특유의 삼바 스텝이 계속 재현됐다.
지난해부터 가장 투쟁심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준 카를레스 푸욜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바르셀로나 동료였던 호나우지뉴가 돌파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달려들더니 마구 괴롭혀 공을 빼앗아버렸다. 수비에 당한 호나우지뉴가 활짝 웃으며 푸욜의 뒤통수를 치는 모습까지도 그다웠다. 푸욜은 그 뒤에도 가레스 베일 등을 틈날 때마다 찰싹 따라가고, 동료들에게 왜 뛰지 않냐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욘 아르네 리세는 유쾌한 쇼맨십이 있었다. 오버래핑해 공을 받았는데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않자 공을 멈춰 세우고 두 손을 눈 위에 대며 ‘다들 어디갔냐’라는 듯한 제스처로 폭소를 이끌어 냈다. 리세는 패스를 달라고 여러 번 손을 들었지만 공이 오지 않자 두 팔을 번쩍 들어 쭉 뻗으며 계속 웃음을 자아냈다. 프리킥을 내주자 공 바로 앞에서 벽을 만든 리세에게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주심이 다가가 ‘저기 보이지? 저쪽 가서 서’라는 듯한 손짓으로 예능 합까지 맞췄다.
구자철은 센터백으로 뛰다가 상대 압박을 받자 ‘자철턴’으로 마크를 가볍게 따돌렸다.
교체 상황 역시 향수를 자극했다. 스피어의 첫 교체선수로 로베르 피레스가 아르센 벵거 감독 옆에서 나란히 대기했다. 약 25년 전 아스널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한 장면이었다.
실드에서 이영표를 교체 투입한 뒤에는 박지성과 맞대결이 벌어졌다. 두 선수는 유럽 진출할 때 PSV에인트호번 동료였고, 잉글랜드로 진출한 뒤에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박지성과 토트넘홋스퍼의 이영표가 맞대결하며 한국인 유럽진출사의 명장면을 함께 만든 바 있다. 이번엔 스피어의 수비수로 나온 박지성, 실드의 윙어로 나온 이영표의 입장이 바뀌었다. 현역 시절 박지성이 이영표의 실수를 유발한 뒤 슬쩍 등 뒤로 손을 맞잡던 명장면은 재현되지 않았지만 두 선수가 격돌하는 건 볼 수 있었다.
이영표는 스텝오버 드리블의 달인이자 누구보다 몸 관리를 잘 하는 선수답게 현역 시절 못지 않은 현란한 발재간으로 두세 명을 스르륵 돌파했다.
앙리의 스루패스를 받아 피레스가 측면에서 문전으로 파고들고, 캠벨이 슬라이딩 태클로 쓰러뜨리는 것도 아스널 팬들의 추억을 소환할 만했다.
반대로 너무 느려진 동료들의 무딘 발을 감안하지 않고 지나치게 긴 스루패스가 허무하게 굴러가면 관중들은 탄식하거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플레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감상하겠다는 관중들의 집중력은 어느 빅 매치보다 높았다.
사진= 넥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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