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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글을 통해 한 사람의 회피 성향이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감정이 거절당했던 아이, 예측 불가능한 사랑에 노출되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친밀감이라는 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이처럼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가진 사람이,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여기는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둘의 만남은 마치 자석의 다른 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운명적인 사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관계는 한 사람의 영혼을 서서히 잠식하는 정서적 착취의 무대가 되어버립니다.
회피형 나르시시스트라는 조합이 왜 관계에서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불리는지, 그 비극적인 서막과 결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서로에게서 완벽한 상대를 발견하다
나르시시스트의 눈에 비친 회피형 남성은 꽤 매력적인 사냥감입니다. 그는 감정적으로 크게 요구하는 법이 없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모습이 오히려 ‘쉽지 않은 상대’라는 도전 의식을 자극합니다.
정복하기 어려운 상대를 무너뜨리고 소유하는 것만큼 짜릿한 나르시시즘적 공급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회피형의 그늘진 내면을 ‘내가 구원해 줘야 할 신비로운 영역’으로 착각하고, “내가 바로 당신의 상처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라 속삭이며 그의 텅 빈 공간을 자신의 화려함으로 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회피형 남성에게 나르시시스트의 첫인상은 구원자처럼 다가옵니다. 세상의 중심인 듯 당당한 태도, 끊임없이 쏟아내는 찬사와 애정 공세(러브 바밍)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인정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정서적 가뭄 속에서 살아온 그에게 나르시시스트의 관심은 단비처럼 느껴지고, 이 사람 곁이라면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게 됩니다.
회피형 남성은 이 강렬함을 진정한 친밀감으로 착각하고, 평소와 달리 자신의 경계선을 쉽게 허물어 버립니다. 이처럼 서로의 결핍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지점에서 둘의 관계는 시작됩니다.
가면이 벗겨지고 착취가 시작될 때
하지만 이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교감이 아니라, 자신의 위대함을 비춰줄 거울, 즉 ‘나르시시즘적 공급원’이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회피형 남성이 자신의 본성대로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나르시시스트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분노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향했던 찬사가 줄어드는 것을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예를 들어, 뜨거운 주말을 보낸 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진 회피형이 연락에 소홀해지면, 나르시시스트는 이를 자신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으로 해석합니다.
이때부터 나르시시스트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이 시작됩니다. 회피형이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마다 “넌 너무 이기적이야”,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며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회피형이 감정 표현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너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비난하며 그의 자존감을 깎아내립니다.
회피형 남성은 이미 자신의 내면에 ‘나는 관계를 맺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난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서서히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역시 나는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봐’라는 오랜 믿음이 현실에서 증명되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관계는 더 이상 평등하지 않고, 한 사람은 끊임없이 요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책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착취의 구조로 변질됩니다.
조용한 학대자, 코버트 나르시시스트
우리가 흔히 아는 외향적이고 과시적인 나르시시스트보다 회피형에게 더 치명적인 유형이 있습니다. 바로 내향적 나르시시스트, 즉 코버트 나르시시스트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대신,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연약한 피해자인 척 연기합니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상처받았어”,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은 너뿐이야”와 같은 말로 회피형에게 접근합니다. 이는 회피형에게 부담스러운 감정적 요구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이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는 우월감과 안정감을 줍니다.
하지만 이 연민과 동정심 뒤에는 상대를 통제하려는 교묘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회피형이 거리를 두려 할 때마다, 코버트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과장하며 그를 ‘가해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직접적으로 분노하는 대신 깊은 한숨을 쉬거나,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괜찮아, 난 상처받는 데 익숙하니까”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회피형은 이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상대에게 끌려다니게 됩니다.
결국 이 관계의 끝에서 회피형 남성에게 남는 것은 깊은 혼란과 황폐해진 자아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토록 지치고 불행한지조차 설명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은 나의 문제’라는 결론 속에서 고립됩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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