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동시에 실현하는 프랑스
우리 사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는 자주 쓰이지만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언론 보도나 정책 발표에서도 두 용어가 뒤섞여 사용되면서 때로는 같은 에너지원이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보통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라는 단일 개념이 쓰인다.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처럼 자연적으로 반복적이고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한국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라는 법률을 통해 ‘신재생에너지(New & Renewable Energy)’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법제화했다.
이 법은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 기존 재생에너지는 물론이고, 연료전지, 수소 에너지, 석탄 액화·가스화처럼 아직 상용화 단계가 미흡하거나 새로운 기술 기반으로 개발되는 에너지원까지 포괄한다. 따라서 같은 태양광도 국제적으로는 ‘재생에너지’로 불리지만 한국에서는 ‘신재생에너지’에 포함되는 이중적 분류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책 담당자와 산업계, 그리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이해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환의 패러다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념의 정리부터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국제사회는 ‘재생에너지’,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정책 우선순위의 갈림길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42.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미국 역시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대규모 전환 계획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를 보유하며 재생에너지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해 가고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재생에너지’라는 명확한 범주 속에서 태양광·풍력 등 경제성과 기술적 안정성이 확보된 에너지원에 집중 투자하는 흐름을 보인다.
반면 한국은 ‘신재생에너지’라는 폭넓은 개념을 쓰다 보니 정책의 우선순위가 분산되고, 재정 지원과 산업 육성 전략이 균형을 잃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료전지나 수소 같은 신기술 에너지원은 미래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비용이 높고 기술적 불확실성이 크다. 반대로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입증되고 대규모 보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 구조에서는 이 두 축이 모두 ‘신재생에너지’라는 이름 아래 묶이다 보니, 어디에 더 많은 예산과 정책적 역량을 우선 배분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흐려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국제적인 흐름과 발맞추기 위해서는 우선 ‘재생에너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정책 언어를 재정비하고, 그 위에 ‘신에너지’라는 별도의 기술 개발 카테고리를 얹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미래의 선택, 재생에너지 집중과 신기술 투자 간 균형이 관건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어떤 에너지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우선적으로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 이미 경제성과 기술 안정성이 입증된 재생에너지에 과감히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기후위기 대응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빠르게 줄일 수 있는 수단에 힘을 모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재생에너지는 이미 국제적 표준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글로벌 투자도 빠르게 확대되는 분야라 한국이 뒤처질 경우 산업 경쟁력에서 돌이키기 힘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동시에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신기술 기반의 에너지원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연료전지, 수소, 차세대 원자재 기반 에너지원은 장기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적 선택의 문제는 ‘무엇을 먼저’에 있다.
당장 전력 생산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볼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에 두되, 신에너지 분야는 기술 혁신과 미래 시장 개척을 위한 전략적 투자 영역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재생에너지는 현재의 해법으로, 신에너지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나누어 정책 방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용어의 정리와 정책의 우선순위 설정이라는 정치적·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용어의 혼란을 바로잡고, 국제사회와 공통 언어를 공유하면서, 당장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재생에너지에 집중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신기술 투자까지 균형을 잡을 때 비로소 한국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길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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