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5월, 제 딸은 6살이었습니다.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누가 딸을 데려간 겁니다. 당시에 6개월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있으니 너는 집에서 필요 없다고 한다'며 따라오라고…"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한태순씨는 그렇게 사라져버린 딸을 찾으려 수소문했으나, 국가는 "딸이 고아원에 들어갔다"고 말할 뿐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딸이 사라진 지 44년째가 되던 2019년, 한씨는 '325 카므라'라는 단체의 DNA 매칭 서비스를 통해 딸을 찾았다. 40년이 흘러 만난 딸은 미국 가정에 입양돼 '로리 벤더'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딸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오랜 시간 쌓인 언어의 장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한씨는 "우리는 수십년간 함께할 수 있었던 삶, 사랑, 그리고 단순히 엄마와 딸로서 나눌 수 있었던 순간들은 우리는 결코 누리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정부, 이 일을 진행한 고아원, 관련 입양기관이 진실을 인정하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것은 단지 제 이야기가 아니다. 동의 없이, 확인 없이, 인간의 권리를 무시한 채 해외로 보내진 수천 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라며 말을 끝마치고도 한참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해외입양인을 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하는 '뿌리의집'을 중심으로 1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제3회 입양 진실의 날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해외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 앞으로의 길 모색'을 주제로 마련된 이 자리에는 미국, 호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등 각국의 입양인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한씨를 비롯해 총 5명의 참석자들이 해외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증언했다. 당시 다수의 해외 입양은 입양부모 적격성 심사 없이 무차별하게 진행되거나, 고아 서류가 조작되는 등 불법적인 행태로 이뤄져왔다.
덴마크에 사는 미아 리 한센씨는 "한국 가족이 제 입양 서류를 읽고 한 첫 마디는 '여기 적힌 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이라며 "친부모님은 저를 입양 보내겠다는 동의서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그들의 아이를 빼앗아 갔고, 저를 팔아넘겼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의 삶, 저의 뿌리와 문화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1976년 생후 3개월이던 당시 덴마크로 입양됐지만 요아킴 베른(Joakim Bern)씨도 조작된 정보 탓에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혔다고 증언했다. 그는 "제 신분을 조작하기 위해 위조된 서류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단지 영아 송출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다"며 "한국은 이제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총 입양 수는 14만1776건에 달한다. 진실화해위에는 372건을 접수해 이후 367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이는 전체 14만여건 중 0.25%에 해당한다. 이후 진실화해위는 367건 중 56건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했다. 나머지 311건은 조사 중지 결정됐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이상훈 변호사는 "진화위 3기가 출범한다면, 조사 중지된 311건을 포함한 비신청 해외입양 사건 전반에 대해 보다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조사 결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해외 입양 과정에서 '고아 호적 제도'가 악용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며, 신청인들 전체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아 호적 제도는 국가가 논리적으로 증명이 어려운 '해당 아동이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국가 차원에서 증명하도록 한 제도다.
이 변호사는 "신청인들 전체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당시 고아 호적 발급 절차가 너무 부실해서, 설사 고아호적이 발급됐고 친생부모의 신원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더라도 실제로 친생부모가 부존재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당시의 고아호적을 반박할 자료가 현재 존재하는지 여부, 라는 우연한 제3의 요소에 따라 국가 책임이 달라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5월 26일 조사 기간이 종료된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오는 11월 26일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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