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투자 유치 실패를 넘어, 태광산업의 경영 정상화와 함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복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치고 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의 EB를 인수하기로 했던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인수 철회 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태광산업이 지난 6월 이사회를 열고 EB 발행을 결정했을 당시부터 업계 관심은 한국투자증권의 행보에 관심이 모였다. 태광산업이 보유 자사주 전량(24.41%)을 기초로 EB 발행을 추진하며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태광산업 주요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EB 발행이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가 있어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한국투자증권은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EB 인수를 시도했으나, 결국 철회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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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태광산업이 지분 관계가 없는 흥국생명 유동화를 돕기 위해 이번 EB 발행을 결정했다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흥국생명이 사옥을 리츠(부동산투자회사)로 매각하면 태광산업이 해당 리츠에 약 700억원을 투자하는 식이다. 흥국생명은 비상장사로, 이 전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태광산업은 지난 2022년 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흥국생명의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여론이 악화하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태광산업이 수요자를 찾지 못해 EB 발행에 실패할 경우 사업재편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태광산업은 EB 발행으로 조달하는 3200억원의 자금을 통해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개발 등 비주력 신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중장기적으로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섬유·석유화학 등 전통 주력 산업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신사업 확장을 통한 생존을 모색한다는 의도였다. 태광산업은 당시 “EB 발행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매출 감소와 적자 지속, 주력 공장 가동 중단을 타개하기 위한 전면적 사업재편”을 강조했었다.
태광산업은 업황 부진 등의 이유로 지난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4년간 누적 손실 규모만 2473억원에 달한다. 태광산업은 아크릴, 나일론, 스판덱스 등 섬유와 고순도테레프탈산(PTA),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중국발(發) 저가공세 탓에 수익성 악화를 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 사태는 태광그룹의 오너 복귀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EB 발행을 두고 이호진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EB를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과 신사업 확장으로 그룹 전반의 ‘새 판 짜기’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태광산업이 4000억원대의 자금을 투입해 애경산업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EB 발행이 무산될 경우 이 전 회장의 복귀 시나리오 역시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 전 회장은 2023년 8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부터 꾸준히 경영 일선 복귀를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400억 원대 회삿돈 횡령 및 배임혐의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됐고, 2019년 징역 3년 형이 확정돼 복역하다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횡령·배임 혐의를 완전히 떨쳐내진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그룹 계열사였던 티브로드 지분을 SK브로드밴드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2000억원의 이득을 봤다는 혐의로 지난 7월 수사에 착수했다. 이 전 회장은 현재 태광산업 비상근 고문으로서 비정기적으로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의 공백기간 동안 인수합병(M&A) 기회를 통해 경영정상화를 시도했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22년 말에는 태광산업이 향후 10년 동안 1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이달 애경산업 경영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투자 실적이 없다”며 “경영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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