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금융그룹의 대형 저축은행 인수전이 모두 무산됐다. 상상인저축은행에 이어 페퍼저축은행 협상까지 중단되면서,OK금융이 추진하던 '메가뱅크 전략'이 사실상 좌초됐다. 수도권 영업권 확대와 업계 1위 도약을 겨냥했던 구상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상상인저축은행은 지난 7월 말 OK금융과의 협상 결렬을 금융위원회에 공식 통보했다. 양측은 매각가를 1080억원 수준으로 잠정 합의했다.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고용승계와 임직원 처우 등 세부 조건에서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OK금융은 인수가로 1082억원을, 상상인은 1100억원을 제시했다. 불과 20억원 안팎의 차이였다.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까지 갔지만 상상인 측이 돌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금융권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상상인 측은 이후 복수의 사모펀드 등 다른 인수자들과 물밑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매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OK저축은행 측이 가격을 크게 후려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상상인 그룹 내부에서도 가격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상상인그룹은 2023년 금융당국으로부터 유준원 대표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이유로 상상인·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지분 매각 명령을 받은 바 있다. 올 3월에는 건전성 악화로 적기시정조치를 겪기도 했다. 실제로 상상인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27.00%, 연체율은 21.29%로 업계 평균(9.00%)의 두 배를 넘어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은 27.76%에 달하는 등 구조적 리스크가 심각했다. 그럼에도 최근 실적 개선세와 복수 인수자 확보가 전해지면서 협상 주도권은 상상인 측에 넘어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페퍼저축은행도 사정은 비슷했다. OK금융은 페퍼저축은행 인수를 위해 두 달여간 실사를 진행했지만 부동산 PF 부실 우려와 인수가격에 대한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다. 페퍼저축은행 모기업인 페퍼그룹은 결국 매각을 철회했다. 업계에 따르면 페퍼저축은행의 희망 매각가는 2000억원대 초반이었으나 PF 관련 부실 정리와 연체율 상승, 대손충당금 부담 등이 협상을 가로막았다.
OK금융은 당초 상상인과 페퍼를 동시에 인수해 수도권 전역을 아우르는 영업권을 확보하고 자산 규모를 19조원대로 키워 업계 1위 지위를 굳히려는 전략을 세웠다. 현재 OK저축은행은 자산 13조6612억원으로 SBI저축은행(13조4074억원)을 제치고 1위를 탈환한 상태다. 여기에 상상인과 페퍼를 더하면 업계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넓히며 '메가뱅크'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잇따른 협상 무산으로 계획은 좌초됐고 OK금융은 향후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비은행 부문으로 눈을 돌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는 이번 결렬을 저축은행 인수합병(M&A)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상상인과 페퍼처럼 자산 1조원 이상, 업계 10위권 내에 드는 대형 매물조차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서 업권 내 인수·합병 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업계 1위인 OK저축은행조차 상상인과 페퍼 인수에 실패했는데 이만한 규모의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없다"며 "앞으로는 사모펀드나 비금융 기업의 참여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KBI국인산업이 라온저축은행을 인수한 사례가 업계 구조조정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지난 3월부터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인수·합병 허용 대상을 확대하고 수도권 저축은행에도 예외적으로 M&A를 허용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대주주 결격 사유로 주식 처분 명령을 받은 저축은행도 인수·합병 대상으로 포함시키며 시장의 활발한 재편을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PF 부실이 정리되지 않고 연체율이 안정되지 않는 한 업계 전반의 자율적 구조조정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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