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상법과 노조법 개정이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급격히 엄격해지고 있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증가 등 상법 개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원하청 산업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노조법 개정 논의까지 맞물리며 기업의 자율경영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기업의 자율성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10일 출범시킨 제3기 ESG 경영위원회는 기업 주도의 ESG 경영 문화를 확산하고, 현장 중심의 실질적 이행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ESG 경영 환경은 대내외적으로 격변의 시기”라며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민관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환경을 보면 미국은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무기 삼아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흔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8월 한 달간 전년 동월 대비 12%나 급감하는 등 수출 현장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지속가능성 공시와 공급망 실사 등 ESG 규제를 주도해왔지만,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규제 시행 시기를 늦추거나 내용을 간소화하는 ‘옴니버스 패키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해외 시장과는 상반되게 내부 규제가 더 강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손 회장이 지적한 대로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고 있다”는 우려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칫하면 기업 경쟁력 약화와 산업 생태계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ESG 관련 법률과 제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1,269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운용하며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상황에서, 기업 자율성과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는다는 우려가 크다.
이 같은 변화는 단지 ESG 경영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일본도 한때 과도한 환경 규제와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인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 경험이 있다. 이후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자율성을 회복하고 혁신 동력을 살려냈다. 우리도 일본의 교훈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 자율성과 ESG 경영의 조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하다. ESG는 단순한 규제 준수가 아니라 기업의 자발적 혁신과 책임 경영을 촉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는 기업을 옥죄고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를 막는다. 규제 완화와 함께 민관 협력을 강화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ESG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정부와 산업계, 투자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ESG 명분 뒤에 숨은 규제 강화’가 아닌, 기업 자율성과 책임경영이 공존하는 진정한 ESG 시대를 열 때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