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글로벌 빅파마 간 치열한 혈투 펼쳐져
글로벌 제약사가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래 의료 기술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싱크탱크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비만 치료제를 ‘미래에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분야’ 18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2022년 시장 규모(240억 달러)와 비교하면 12배 고속 성장이다.
빠르게 성장 중인 GLP-1 시장
체중 감량 효과는 더 크고, 부작용은 더 적은 약품을 내놓기 위한 혈투가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GLP-1’ 시장은 글로벌 제약 산업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투워즈헬스케어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GLP-1 시장 규모는 628억 6,000만 달러로 추정되는데, 오는 2034년에는 약 2,684억 달러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17.5%에 달한다.
GLP-1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잡아주고, 음식이 위장에서 소장으로 넘어가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증대시키는 체내 호르몬이다. 췌장이나 심장 등에 존재하는 GLP-1 수용체에 작용해 이러한 효과를 낸다. 물론 혈중에 있어도 금방 분해되기 때문에 천연 GLP-1을 직접적으로 비만 치료제에 활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개발된 게 GLP-1 수용체 작용제다. 몸으로 주사된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천연 GLP-1인 것처럼 몸을 속여 체중 감량에 효과를 보인다.
현재 GLP-1 시장은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와 미국의 일라이 릴리의 양강 구도가 공고한 가운데, 암젠과 같은 추격자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2021년 체중 감량 치료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는 ‘기적의 비만약’이라고 불렸다. 위고비는 음식이 위를 떠나는 속도를 늦추며, 식욕도 억제하는 호르몬(GLP-1)을 모방해 살을 빼게 하는 원리였다. 여기에 감량 효과를 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기 위해 몸 안의 호르몬 수용체 여러 곳을 동시에 공략하는 작전을 쓰며 탄생한 것이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다. 이는 GLP-1 수용체뿐 아니라 GIP-수용체에 동시 작용한다. 마운자로는 임상 시험에서 압도적인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마운자로와 위고비를 직접 비교한 글로벌 임상 3상에 따르면 마운자로 투여군은 평균 체중 감소율 20.2%, 허리둘레 18.4㎝ 감소를 기록했다. 이는 위고비 투여군의 평균 체중 감소율(13.7%)과 허리둘레 감소치(13㎝)보다 각각 47%, 5.4㎝ 높은 수치다. 체중 감량 또한 평균 22.8㎏으로 위고비(15㎏)를 앞섰다.
이에 올해 1분기 마운자로의 미국 점유율은 53.3%로 위고비를 이미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최근 판매가 시작되자 처방받기 위해 환자들이 ‘오픈런’에 나서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 시장에 출시된 위고비는 올해 1분기 기준 한국 비만 치료제 시장점유율 73.1%를 차지하고 있으나 마운자로 쪽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분위기를 고려하면 한국 시장 내 점유율 역전도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빅파마(대형 제약사) 간 경쟁은 기술 혁신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사제의 불편함을 해소할 경구용 치료제나 피부에 붙이는 패치형, 더 강력한 효과를 내는 이중·삼중 작용제 개발이 차세대 비만 치료제 시장의 핵심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산업 지형 재편하는 역할도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 효과 외에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로도 주목받고 있다. ‘배고픔을 억누르는 효과’를 넘어 ‘다른 욕망을 억제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인 것인데, 실제 비만 치료제는 쾌감·즐거움과 관련한 도파민 분비를 제어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치료를 위한 용도로 쓰임새도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비만 치료제는 부작용에 대한 걱정 없이 투약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모두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부작용이 존재한다. 설사나 구토 등 위장관 관련 부작용부터 췌장 효소 증가나 저혈압, 탈모, 급성 신장 손상 등의 부작용 사례도 보고된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에 현재까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 사용자의 급성 췌장염 보고가 400건가량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급성 췌장염은 위 뒤쪽에 있는 췌장에서 갑작스레 염증이 발생하는 질병이다. 심한 복통이나 메스꺼움, 발열을 일으킨다.
한편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장은 전 세계 소비 행태와 산업 지형을 재편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먹거리 산업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간식 소비 감소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코넬 대학교와 소비자 인사이트 그룹 뉴머레이터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GLP-1 환자는 약물 복용 후 6개월 동안 식료품 지출을 평균 5.5%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가 모건스탠리와 펼친 조사를 살펴봐도 체중 감량 약을 복용 중인 고객 집단에서 식품 지출을 줄이고, 다른 분야에서 오히려 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확인됐다. 식비로 아낀 돈을 라이프스타일 소비에 쓰게 되는 셈이다.
항공업은 수혜를 보게 될 전망이다. 그간 항공기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항공사의 경우 승객들의 평균 체중 감소가 연료비 절감으로 직결될 수 있어서다. 실제 미국인의 평균 몸무게가 10파운드 줄면 유나이티드항공은 연간 2,760만 갤런의 항공유를 절약해 약 8,000만 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외에 체중 감량이 새로운 옷 소비로 이어져 의류 산업도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여행 및 레저 산업도 덕을 보고 있다. 체중이 줄면 사람의 활동성은 높아지고, 자신감이 붙어 여행 수요와 야외 여가 활동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GLP-1의 가장 큰 경제적 기여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의료비 부담 완화다. 미국에서만 비만 관련 의료비 지출은 연간 약 1,730억 달러에 달한다. 비만은 암과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 200여 질병을 유발하는 이른바 ‘관문 질환’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건 인류 건강 증진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세계 비만 연맹은 2020년 9억 8,800만 명이던 비만 인구가 2035년엔 19억 1,400만 명까지 늘 것으로 예상한다. 비만 합병증에 따른 의료 비용과 노동력 손실 등 사회적 비용 역시 2020년 1조 9,600억 달러에서 2035년 4조 3,200억 달러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비만 치료제가 수명 연장과 건강 증진, 삶의 질 개선 등 전 세계인의 건강에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일 수밖에 없다.
Copyright ⓒ 이슈메이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