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 급증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은행권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최근 공공기관을 사칭하거나 금융기관을 가장하는 등 점점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으며 피해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예방 책임이 있는 주체가 피해액의 전부를 배상하는 이른바 '무과실 배상책임제'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766억원(1만470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동기(3909억원) 대비 무려 약 99%가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치다. 특히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가 75%(약 5867억원)에 이르며 건당 평균 피해액은 7554만원에 달했다.
현재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부는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지난달 ‘범정부 보이스피싱 대응 TF’를 열고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예방중심의 유관기관 통합 대응을 통해 보이스피싱 근절’이라는 정책목표 아래 △대응 거버넌스 개편 △예방중심·선제대응 △배상책임·처벌강화 등 3대 전략을 중심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특히 금융사의 범죄피해 배상책임이 더 무거워진다. 정부는 금융회사와 같은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있는 주체가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해주도록 법제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범죄예방 노력을 유도하고 내실있는 피해구제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영국·싱가포르 등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금융회사의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는 해외국가사례를 참고해 제도개선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영국은 지난해 10월, 금융사기 거래의 심각석을 인지하고 은행을 비롯한 결제·지금기관이 소비자에게 8만5000파운드(약 1억6000만원) 한도 내에서 피해금액을 의무적으로 상환하는 세계 최초의 강제 배상 규칙을 도입했다. 또한 싱가포르는 전통적인 '폭포수 접근법'에 따라 은행-통신사-소비자의 차례대로 상위 기관이 주요 책임을 위반했다면 전적으로 배상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날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보이스피싱을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금융권은 '보이스피싱 무과실 책임배상'의 법제화는 이제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이에 은행권은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체계'를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KB국민은행은 증가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적 시스템과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를 진행했다. 지난 8월 기존의 11명이던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인원을 25명으로 늘렸다. 증원된 인원은 보이스피싱 예방의 핵심인 모니터링 업무를 수행하며 최근 피해가 급증하는 범죄 유형을 분석해 집중 탐지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를 이어가고 있다. AI가 스스로 피해사례를 분석해 수상한 거래 패턴을 미리 찾아내고 신속한 계좌 지급정지 등 예방조치를 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피해 사전예방 효과를 높였다. 해당 시스템은 오는 10월 정부 차원의 ‘보이스피싱 AI플랫폼’ 구축 이후, 데이터가 축적되면 고객별로 더욱 정교하고 맞춤화 된 탐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KB금융그룹은 오는 11일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와 디지털·금융 정보 격차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농촌지역 주민을 위해 ‘KB착한푸드트럭’과 연계한 ‘찾아가는 보이스피싱 예방교육’을 추진한다.
우리은행은 보이스피싱 예방전문기업인 ‘씽크풀’과 손잡고, AI 기반의 체험형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 서비스 ‘하마터면’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은행은 지난해 금융권 최초로 금융소비자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시 최대 1000만원의 보험금 지급하는 '보이스피싱 보상보험' 무료 가입을 시행했으며 올해는 경찰청, 금융보안원과 협력해 ‘보이스피싱 의심 해외계좌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더불어 LG유플러스와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업무협약을 맺고△보이스피싱 수법 공유 및 협업사항 발굴·추진 △피해 예방을 위한 지원 체계 마련 △실무 협의체 운영을 통한 세부 실행계획 수립 등을 추진한다.
신한은행은 가상자산거래소 코빗과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사기의심계좌 정보 공유 및 핫라인 구축 △보이스피싱 범죄 원화 피해금 환급 상호협력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업무를 위한 실무자 교육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할 예정이며 협력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IBK기업은행은 SKT와 금융과 통신 정보를 연계한 ‘AI보이스피싱 피해‧탐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SKT가 제공하는 금융권 고객보호 강화 솔루션 ‘SurPASS’를 IBK기업은행의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에 적용해 고객의 보이스피싱 전화 수신‧발신 여부와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IBK기업은행은 KT 및 LGU+와도 순차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서비스를 오픈할 계획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전 직원 대상 보이스피싱 대응 교육 △경찰 현장 출동 지원 등 상황별 시뮬레이션 활동 △대 직원 메시지를 통한 정보 공유 등 다양한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보이스피싱에 취약한 고령층 고객을 대상으로 복지센터 등을 찾아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찾아가는 금융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은행권은 정부 기조에 맞춰 보이스피싱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무과실 책임배상에 대해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권은 보이스피싱 예방 시스템 구축 및 고도화에 매년 많게는 100억원 이상을 투입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번에 추가적으로 모든 책임을 배상하라는 것은 과도한 처사다"며, "배상액 및 기준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또한 직원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경우 보이스피싱 여부의 확인과 심사 절차로 인해 업무지연으로 인한 고객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이 같은 볼멘 소리에 대해 정부는 금융사가 일정 책임을 지게 할 경우 인력과 기술을 고도화해 범죄 예방 효과도 더욱 커질 수 있으며 금융권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방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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