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가을 해풍을 담은 바다의 보석, 꽃게는 이름 그대로 껍질에 아름답게 맺힌 꽃무늬로 불린다. 한자로 '화해'(花蟹)라 부르며, 풍부한 색감과 견고함은 바다의 풍요를 상징해왔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꽃게는 계절의 흐름과 공동체의 문화, 건강과 기원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꽃게 요리의 역사는 조선시대 문헌에 귀한 진상품으로 처음 등장한다. '동국세시기'는 음력 5월 단오 무렵 꽃게 맛이 극상임을 기록하고 있다. 당대 서민은 이 시기 꽃게를 잡아 술안주와 찌개로 즐겼다. '경도잡지' 등 고문헌은 한강 변, 서해안 일대의 꽃게잡이 열풍을 증명한다.
꽃게는 풍어와 다산의 상징으로, 암꽃게의 알은 자손 번성과 가정의 풍요를 상징하는 제물로 올랐다. 신혼부부 예물함에 꽃게 문양을 새겨 넣거나, 장식품에 쓰인 이유도 외부의 재난으로부터 집안을 지키고, 생명력의 표상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 한방과 식재의 효능
한의학에서는 꽃게를 화해(花蟹), 혹은 준자해(梭子蟹)라 칭한다. 성질은 차고 맛은 맵고 쓰며, 심경·간경·비위경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껍질은 혈액순환, 어혈 분해, 소화 촉진, 정체 해소에 도움을 주며, 게알(蟹黃)은 열의 해독, 통증 멎음, 부기 제거에 효능이 있다.
'본초강목'은 꽃게의 알과 껍질이 종기·부종 완화, 혈액 정화, 황달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했다. 동의보감도 차가운 성질의 꽃게가 산후 통증과 어혈에 좋다고 언급했다. 단, 소화력이 약하거나 냉체질, 임산부는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하며, 신선도가 떨어진 꽃게는 식중독 위험이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꽃게는 고단백 저지방 해산물의 대표 주자다. 100g당 19g 이상의 단백질과 1~2g 정도의 지방을 함유해 성장기 어린이와 노인, 회복기 환자 등 균형 영양 보충에 적합하다. 필수아미노산의 비율이 높아 근육 유지와 면역력 강화에 직결된다.
그뿐만 아니라 면역, 신경 안정,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100g 기준 약 700mg 내외)이 풍부하며, 아르지닌, 메티오닌, 시스테인 등 간 해독·술독 제거 효과도 입증돼 있다. 꽃게는 대게나 새우보다도 타우린 함량이 많아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혈액순환 개선, 심혈관질환 예방에 탁월하다.
이에 덧붙여, 칼슘, 인, 마그네슘, 아연, 셀레늄, 철분, 칼륨 등 무기질 성분이 암꽃게와 게딱지, 내장에 농축돼있어 골다공증 예방, 뼈 건강 강화, 성장기 발육 및 면역기능 유지에 효과적이다. 비타민 A와 B1·B2·B6·C·E 등 비타민도 풍부해 시력·신경 안정·노화 방지에 기여한다.
꽃게 껍데기에는 키틴질과 키토산이 다량 함유돼 지방 흡착, 혈관 정화, 항암·항산화(아스타잔틴, 비타민E의 500배 수준) 효과가 주목받는다.
꽃게는 계절마다 색다른 미식 세계를 선사한다. 가을 암꽃게는 알이 꽉 차 국물 맛이 깊은 꽃게탕에 제격이며, 봄 수꽃게는 살이 단단해 꽃게찜으로 담백함을 즐긴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등 꽃게장의 진한 풍미는 전통 발효 문화와 어우러져 밥도둑으로 불리며, 한국 자연식의 미학을 증명한다.
볶음과 조림은 양념과 채소의 조화로 변화무쌍한 바다의 맛을 끌어낸다. 튀김과 구이는 껍질째 먹을 수 있게 바삭하게 마무리하며,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바다의 힘을 느끼게 한다.
꽃게는 동서양 요리에 모두 어울린다. 서양에서는 꽃게살 크랩케이크·파스타, 동남아와 중국에서는 칠리크랩, 게찜 등으로 다양하게 즐긴다. 한편, 꽃게는 부패가 빠르기 때문에 반드시 신선하게 손질, 조리해야 하며, 보관 시 냉동과 급랭 관리, 조리 전 껍질을 깨끗하게 세척하는 습관이 안전성의 기본이다.
꽃게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소화 장애나 복통,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생강·마늘·고추 등 따뜻한 성질의 부재료와 함께 조리하는 것이 중화에 효과적이며, 게 알레르기 환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영양적 효능과 함께 부작용 관리 역시 미식의 기본이다.
◇ 손자병법으로 본 꽃게의 지혜
손자병법 군형 편은 '적이 형세를 드러내지 않으면, 나 또한 나의 형세를 드러내지 않는다. 물은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故兵形象水, 水無常形, 兵無常勢)고 쓰고 있다. 꽃게 역시 바다와 조리법, 계절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화와 응용이 가능하다.
꽃게탕은 군형의 '정'(正) 전법으로 정면 대결을 하며 깊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게장은 '기'(奇)의 전략으로 숙성과 발효를 해 의외의 맛과 풍미를 만들어낸다.
찜은 '방진'(方陣) 전법으로 구조적 균형과 견고함을 살린다. 볶음과 조림은 기동부대처럼 변화와 대응력이 강하다. 튀김과 구이는 돌격병처럼 즉각적이고 강렬한 영향을 준다.
꽃게 요리는 한식의 기본이면서, 현대적으로도 각국 요리와 융합하며 새로움을 만든다. 이것은 미식뿐만 아니라, 계절·건강·문화·변화라는 진정한 손자병법적 식생활의 실체다.
바다의 보석이자 건강의 약재, 미식의 중심이자 민족 정서의 상징인 꽃게.
껍데기를 깨고 속살을 발라내는 과정은 삶의 고난과 보람을 대변하며, 조리법의 다양성은 인간과 자연, 노력과 인내를 연결하는 다리라 할 수 있다.
손자가 말한 군형의 지혜처럼, 꽃게는 바다와 계절, 밥상과 삶에 균형과 변화의 연금술을 더한다. 오늘 꽃게 한 마리와 오랜 전통, 깊은 건강, 유연한 미학의 오묘함을 함께 누리길 권한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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