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고와 관련한 농협중앙회의 허술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범정부 주도로 각 산업현장의 산재사고 예방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음에도 농협중앙회 산하 축산농협 직원들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축산농협 내부 직원들은 소·돼지 등 대형 가축의 관리 업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농협중앙회 차원의 안전 교육은커녕 사고 예방을 위한 작은 조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계 보다 위험한 동물, 밟히고 치이는 게 일상" 안전 사각지대 놓인 축산농협 직원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전국협동조합본부 조합원들은 10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본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 178개 농·축협 근로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노동이 존중받는 농협을 만들기 위한 11가지 핵심 과제 제시와 더불어 축산농협 직원들의 산재사고 예방을 위한 농협중앙회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축산농협은 지역 단위로 운영되는 농협중앙회의 회원 조합으로 소·돼지 등 가축을 사육·관리하고 축산물 유통을 담당하는 실질적인 현장 조직이다.
각 지역 축산농협은 축산 농가를 지원하는 동시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계열화 사업장, 도축장, 사료공장, 정육 매장 등을 운영하며 축산물 유통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일부 축산농협은 소·돼지 사육, 인공수정, 분만관리, 질병 방역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도 다루고 있다. 축산농협 내부 직원들 중 상당수는 소·돼지·닭 등의 가축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가축의 경우 기계보다 더욱 예측이 불가능하다 보니 축산농협 직원들은 항상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사고를 겪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일례로 지난 7월 경남 남해축산농협에서는 한 근로자가 소 계류작업 중 소에 묶인 밧줄에 손가락이 걸리면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의 행동 자체가 예측불가능한데다 힘까지 강하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다 발생한 사고였다. 해당 직원은 병원으로 이송돼 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았지만 영구장애 판정을 받고 일상생활에서도 큰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한 지역 축산농협 직원 강진완 씨(37·남·가명)는 "대부분의 축산농협 직원들이 소의 개체 식별을 위해 귀에 번호표를 부착하는 이표 작업을 수행한다"며 "작업 과정에서 소가 강하게 저항하거나 갑작스럽게 움직일 경우 작업자가 밀리거나 치이는 등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이표 작업 과정에서 소의 뒷발에 가슴팍을 세게 맞으면서 갈비뼈에 금이 간 적 있다"고 덧붙였다.
충청 지역의 한 축산농협에서 근무하는 성현수 씨(52·남·가명)는 "소를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트럭에 싣는 과정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전국 축산농협 대부분이 낙후된 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소 상·하차 과정에서 사람을 보호할 칸막이조차 없는 곳들도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마 대부분의 축산농협 직원들은 한번쯤 다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며 "나도 예전에 상·하차 과정에서 소의 뒷발에 맞아 다리가 골절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축산농협 노조에 따르면 내부 직원들은 2020년부터 지속적으로 동물 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전국 각 지역 축산농협을 관리·감독하는 농협중앙회는 무려 4년이 지난 지난해가 돼서야 농·축협 내부 인프라넷인 '아리오피스'에 동물 사고 피해 예방 가이드라인을 게시했다. 그러나 해당 가이드라인은 손쉽게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후 가이드라인의 현장 배포나 직원 대상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는 전국 축산농협을 관리·감독하는 상위 조직으로 각 조합의 경영 지도와 정책 지원, 교육, 안전 관리 등 전반적인 틀을 기획·지시·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축산농협 노조 관계자는 "가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우리에겐 가축에게 당한 사고가 산재사고인데 안전 관련 가이드라인을 무려 4년이 지나서야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며 "동물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기계 보다 더욱 예측불가능하고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산재사고라고 하면 공장이나 건설현장만 이슈가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축산업 관련 현장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농협중앙회도 그런 점을 악용해 안전 관리에 허술하게 대처해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축산 현장에서의 안전사고는 공사 현장의 산업재해와 맞먹을 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중앙회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축 관리 업무는 물리적 위험이 상존하는 고위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직원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점은 축산업 현장의 산업재해가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을 악용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축산 현장은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소나 돼지를 밀접하게 다뤄야 하는 공간으로 단 한 번의 충돌이나 반응에도 중대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작업 환경이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와 돼지가 인간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동물이라는 이유로 일반적인 공사 현장보다 위험성을 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인식 부족이 예방 조치를 미루거나 소홀히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며 결국 구조적인 안전 관리 공백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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