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를 2억 원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서울보증보험을 통해 최대 3억 원까지 가능했던 전세대출은 이제 1억 원이 줄어든다. 정부는 이 조치로 전세 수요를 억제해 집값 상승세를 차단하고 갭투자를 줄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기존 50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강화되어 전세와 매매 모두에서 금융 규제가 동시에 적용된다.
겉으로 보면 이는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당연한 대책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면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단순히 임차 형태 중 하나가 아니라, 무주택자가 안정적으로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다리였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중산층 가구들은 대출을 활용해 전세 보증금을 마련한 뒤, 향후 소득이 늘면 매매로 이동하는 과정을 거쳤다. 즉 전세는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이번 대출 규제는 이 사다리에 제약을 가한다. 대출을 받지 못하면 전세를 선택하기 어려워지고, 많은 가구가 월세 시장으로 밀려난다. 월세는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계 부담이 훨씬 크다. 청년층과 신혼부부는 주거비 비중이 소득 대비 과도하게 높아져 소비와 저축 능력이 줄어든다. 중산층 1주택자도 갈아타기가 어려워지고, 결국 주거 이동성이 축소된다. 반면 집주인은 전세 대신 월세 전환을 통해 더 많은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임대 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우려를 지적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위원은 “월세 시대가 본격화되면 서민층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최원철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전세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월세 중심, 기업형 임대주택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흐름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곧 정책이 단순히 시장 안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주거시장의 패러다임을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문제는 속도와 충격이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급격한 이동은 주거비 부담을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높일 수 있다. 공급 확대와 임대차 안정 장치가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월세 시장 불안은 오히려 집값 불안보다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공공임대나 저가형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요를 흡수할 대안이 마땅치 않다.
결국 이번 대책의 성공 여부는 보완책에 달려 있다. 단순히 대출을 줄이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안정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서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주거 바우처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장기임대주택 제도 강화 같은 실질적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이번 조치는 전세 시장 안정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월세 시장 불안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전세대출 규제가 부동산 과열을 막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라지고 있다. 전세 계약을 고민하던 청년, 신혼부부, 중산층 가구들은 갑작스러운 대출 축소로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묻고 있다. 이번 대책은 과연 주거 안정의 해법이 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주거 불안의 시작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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