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곽호준 기자 | 미국 전기차(EV) 보조금이 이달말 종료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의 전동화 속도가 한층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해온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EY)은 9일(현지시간) 시장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국 내 EV 판매 비중이 2039년에야 전체 자동차 판매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불과 2년 전 제시했던 전망보다 5년 늦춰진 것이다. EY는 중국 2033년, 유럽은 2032년에 전기차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은 주요 시장 대비 5~7년 뒤처지는 셈이다.
EY는 2029년 미국의 EV 비중이 11%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8.1%와 큰 차이가 없어 사실상 정체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콘스탄틴 갈 EY 글로벌 모빌리티 책임자는 "유럽과 중국은 강력한 환경 규제와 보조금 지원으로 EV 보급이 가속화되는 반면 미국은 정책 후퇴로 역주행 중"이라며 "내연기관에 다시 무게를 두면 3~5년 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초 2032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던 7500달러 규모의 EV 보조금은 트럼프 행정부 정책으로 8년 앞당겨 올해 9월 30일 종료된다. 업계는 이번 보조금 폐지로 전기차 보급 초기부터 지적돼온 ‘캐즘(수요 정체기)’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아이씨카스(iSeeCars)는 "미국은 보조금 폐지와 기후 규제 철회의 여파로 2026~2028년 EV 점유율이 4% 수준으로 반토막 날 것"이라며 "올해가 미국 EV 판매와 점유율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도 방향성을 선회하고 있다. 최근 제너럴모터스(GM)는 EV 공장 두 곳의 생산을 감축했고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EV 투자를 상당폭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업계는 2030년까지 EV 판매 비중이 절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현재는 내연기관차 라인업 강화에 다시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에서의 EV 시장은 둔화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테슬라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지난 8월 38%로 내려앉아 2017년 이후 처음으로 40% 선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판매량도 2024년 1% 감소한 데 이어 올해 초부터 1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직격탄이 예상된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약 11조원을 들여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를 완공하며 현지 EV 생산을 확대해왔다. 현대차·기아는 아이오닉5·아이오닉9·GV70 전동화 모델과 기아 EV6·EV9 등은 현지 생산분에 한해 보조금 혜택을 받아왔지만 9월 이후 이 장점이 사라진다. 보조금을 기대하고 세운 신규 공장이 본격 가동되기도 전에 사업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고율 관세가 유지되면서 완성차 업체의 원가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지난 7월 한미 간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으나 한국은 발효가 미확정된 상태로 여전히 현대차·기아는 25% 관세 부담을 떠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생산 라인의 유연성 확보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보조금 종료 후 가격까지 오르면 수요 급감과 공장 가동률 저하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판매 가격 인상 대신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와 하이브리드차를 주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EV 전용으로 세운 HMGMA에도 하이브리드 조립 라인을 추가하는 등 다변화를 시도 중이다.
미국 EV 보조금 종료는 미국 시장 둔화뿐 아니라 국내 완성차 기업의 투자 회수 지연과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전망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는 다양한 친환경 라인업을 통해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 있으나 보조금 효과가 사라지면 EV 수요가 빠르게 위축돼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미국의 내연기관차 친화적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전동화 경쟁에서 한국 업체들도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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