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신라면세점에 부과한 임대료를 25% 인하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고 이를 양측에 송달했다. 이는 법원이 직권으로 내린 결정이다. 신세계면세점 역시 이르면 이번주 유사한 내용의 조정안을 송달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신세계에 전달될 조정안은 20% 안팎의 인하율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제는 인천공항공사다. 공사 측은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기존 (임대료 인하 불가)입장에 변함이 없고, 현재 이의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공사가 2주내 이의신청을 하면 강제조정안은 효력을 잃고 조정 절차는 끝난다. 이후 면세점 측이 법원에 인지세(소송 수수료)를 납부할 경우 조정 사건은 본안 소송으로 전환돼 정식 재판이 진행된다.
실제 신라·신세계면세점 내부에서는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셈법을 계산 중이다. 첫째는 정식 재판이다. 다만 감면 요청액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만큼, 청구 가액에 비례해 납부해야 할 인지세만 수십억원에 달하고, 재판 기간이 3~5년 이상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신라·신세계 법률대리인은 “수억원대 인지세를 선납해야 하는 구조라,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소송을 시작해야 한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매달 임대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조정을 포기하고 영업을 이어가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기존 임대료가 그대로 유지되고, 공사와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불안정한 동거’를 감수해야 한다. 과거처럼 지속적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신라·신세계면세점은 매달 60억~80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월 300억원의 임대료를 인천공항에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는 사업권을 포기하고 인천공항을 떠나는 방법이다. 이 경우 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위약금은 각각 약 1900억원 수준이다. 위약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선 이 시나리오가 금전적 손실이 가장 적을 수 있다는 현실론도 거론된다. 신라·신세계면세점 측 법률대리인은 “경영진과의 최종 논의가 필요하지만 셧다운 가능성도 진지하게 검토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철수를 선택하더라도 계약 해지 통보 후 6개월간 매장 운영을 의무적으로 지속해야 하는 조건이 계약서에 포함돼 있어 즉각 철수는 쉽지 않다.
오는 29일부터 재개되는 중국 단체 관광객(유커)의 무비자 입국도 면세점들의 고민을 복잡하게 만든다. 유커 수혜로 이어질지, 아니면 공항 면세점에서 유커의 소비력이 예전 같지 않아 임대료 부담만 늘어날지 알 수 없어서다. 현재 인천공항공사의 임대료 체계는 ‘여객 1인당 수수료×공항 이용객 수’ 방식이어서, 방문객이 늘면 매출과 상관없이 임대료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구조다.
면세점 양사는 당장 결정을 내리기보다 인천공항공사의 공식적인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공사 측의 공식 입장이 나온 이후, 법적 대응을 포함해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도 “공사의 이의 제기 여부에 따라 우리 역시 대응 수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단순 계약 분쟁을 넘어, 국내 면세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한 관광 소비 트렌드와 공항 수익모델 간 충돌”이라며 “장기적으로 공항과 면세점 사업자가 공존 가능한 구조로 재편되지 않는다면, 국내 면세 비즈니스는 지속 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