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패와 불안을 감싸 안는 따뜻한 시선

*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김초희 감독의 2020년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평범한 듯 특별한 주인공 찬실을 통해 불안정한 시대의 청춘에게 따뜻한 위로와 유쾌한 웃음을 건네는 독립영화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속도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를 다룬다.

영화만을 사랑했던 그녀, 찬실에게 닥친 위기

수십 년간 영화 현장을 누비며 오직 영화만 바라보고 살아온 베테랑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 하지만 존경하던 감독님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그녀의 직장 또한 사라진다.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그녀는 젊은 독립영화 감독 소피(윤승아)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 가진 것이라곤 허름한 셋방과 낡은 영화에 대한 열정뿐. 친구 미영(윤여정)의 집에도 얹혀살고, 삶은 막막하기만 하다.

이처럼 암담한 현실 속에서 찬실 앞에 나타난 뜻밖의 존재는 바로 장국영 닮은 귀신이다. 그는 찬실에게 자신은 찬실의 죽은 감독님과 친하다며, 알 수 없는 조언을 건네고 찬실의 일상을 맴돈다. 찬실은 과연 이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러한 찬실의 팍팍한 삶을 절망적으로 그려내기보다, 그녀의 시선으로 유머러스하고 담담하게 풀어나가며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비우고 채우는 삶의 여백, 유쾌한 사유의 시간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물질적인 성공이나 사회적 기준을 따르지 않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잘나가던 프로듀서에서 한순간에 가정부가 된 찬실은 비로소 화려한 영화판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옥탑방에서 소박한 텃밭을 가꾸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채워나간다. 엉뚱한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과정은 그녀의 내면이 얼마나 순수하고 강인한지 보여주며, 스스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실패를 마주한 이들에게 좌절해도 괜찮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특히 찬실이가 우는 장면과 뒤이어 등장하는 흑백 화면에서 컬러 화면으로의 전환은 그녀의 내면이 어둠을 뚫고 다시 빛을 찾아가는 듯한 감동적인 시각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는 곧 우리가 살면서 겪는 불안과 혼돈조차 결국은 삶의 중요한 과정이며,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다가온다.

소박함이 주는 싱그러움, 따뜻한 청량 미학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연출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마치 일상의 단편을 엿보는 듯한 담백한 영상미와 정겹고 유머러스한 대사들은 영화 전반에 소박하면서도 싱그러운 청량함을 불어넣는다. 햇살 가득한 옥탑방, 친구와 오붓하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 장국영 귀신과의 엉뚱한 대화들은 모두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청량함을 선사하며 관객에게 잔잔한 미소와 편안함을 안겨준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템포를 지키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당신에게 그래, 나는 복도 많지!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 용기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