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 현재 생존해 계신 애국지사는 다섯 분이다. 이제는 역사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독립운동을 삶 그 자체로 증명하는 분들이다. 광복절을 계기로 생존 애국지사의 다양한 독립운동 발자취를 살펴보던 중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한국광복군 활동으로 훈장을 받으신 분이 오성규·김영관 지사 두 분이라는 점이다.
광복을 맞이한 지 80주년이 됐기 때문에 만 100세가 넘은 생존 애국지사의 독립운동은 학생 때의 활동이 주된 내용이다. 학생이 어떻게 군인의 임무를 수행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한국광복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고 애국지사 두 분의 삶을 통해 한국광복군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 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17일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이다. 임시정부는 군사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군대를 편성해 독립전쟁을 수행하고자 했다. 본격적인 광복군 모집에 들어간 임시정부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과 조선의용대를 편입할 계획을 세우고 일제의 이주 정책으로 중국 대륙에 거주하던 조선 청년들에게 광복군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려 광복군 모집에 박차를 가했다.
각각 열여섯, 스물의 학생이었던 오성규·김영관 애국지사는 온갖 고난을 겪고 광복군에 입대했다. 어린 나이에 짧게는 20일, 길게는 3개월간 걸어 광복군 지대에 입성한 것이다. 두 분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필사의 탈출을 한 많은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한국광복군에 입대했다.
이 시기에 광복군에 입대한 청년들은 모두 나라를 빼앗긴 후에 태어나 자라 식민교육을 받았지만 그들의 항일 사상과 민족 관념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임시정부 초기부터 준비해 온 광복군의 목표는 연합군과 대일항전을 전개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통해 국토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한국광복군은 총 3개 부대로 전력을 갖췄는데 충칭의 제1지대는 김원봉 장군이 이끌었고 시안의 제2지대는 이범석 장군이, 푸양의 제3지대는 오성규 지사가 활동했던 곳으로 김학규 장군이 이끌었다.
1945년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식으로 국군이 편성됐다. 많은 한국광복군 출신 인물들이 국군 각 분야에서 활약했고 그 결실은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생존해 계신 두 애국지사가 한국광복군에 입대할 때의 결연했던 의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고자 했던 그 뜨거운 열기를 기억하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그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