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한국의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지난 20여 년간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4년 도입된 과학기술부총리는 불과 4년 만에 폐지됐고, 과기부는 교육부와 통합돼 기능이 분산됐다. 이후 미래부(2013년), 과기정통부(2017년)로 재편됐지만, 기재부·산업부 등 경제부처에 비해 예산권과 정책 조율력은 약했다. 긴 호흡이 필요한 과학기술이 정권과 조직 개편의 파도에 휘둘린 셈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그 한계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다. 이재명 정부는 AI 대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과기부총리를 17년 만에 부활시켰다. 과기정통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해 범부처 차원의 조율권을 확보하는 구조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도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을 총괄할 부총리를 신설해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의 철학은 정책 효율성과 미래 역량 집중이다. 실효성이 낮았던 사회부총리를 폐지하고, 과학기술·데이터·지식재산 같은 미래 먹거리에 조직을 집중시켰다. 방송 정책을 일원화하기 위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신설, 통계청의 국가데이터처 승격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역량을 미래 성장동력에 배치해 낭비를 줄이고 성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직제 부활이 아니라 실질적 권한 강화다. 예산권과 정책 조율력이 뒷받침돼야 GPU 확보, AI 반도체 육성, 국가 컴퓨팅 인프라 구축,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같은 장기 과제를 범정부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과기부총리가 ‘AI 고속도로’ 건설의 진짜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유다.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 역량과 이를 떠받치는 정책 인프라에서 갈린다. 한국이 ‘딥시크 쇼크’를 넘어 AI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이번 개편이 과학기술·산업·데이터·지식재산을 하나로 묶는 국가 혁신 거버넌스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 17년 만에 다시 깃발을 든 과기부총리가 그 시험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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