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해외 출장 중 미국 당국의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구금된 사태를 계기로, 재계에서는 오랜 편법 출장 관행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이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꾸준히 비자 문제 해결을 요청했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응한 적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며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미국 H‑1B 비자 발급 제한과 한국에 해당되는 비자 쿼터 미확보에 있다. H‑1B는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연간 8만5천 장 내외로 발급되지만 신청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만 명에 이른다. 일부 국가는 별도 쿼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한국은 해당하지 않는다.
외교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한국인 전문인력 전용 취업비자(E‑4, 연간 약 1만5000건) 신설을 추진해 왔으나 미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이렇다 보니 일부 기업들은 전문인력 파견을 위해 출장 목적의 B‑1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활용하는 편법을 사용해 왔다. 한 기업 관계자는 "비자를 받기까지의 불확실성과 시간 문제 때문에 일단 일을 마치려는 차원에서 이런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해당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서 편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다만 기업들의 지속적인 민원 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이 늦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사태 이후 빠르게 움직였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구금된 근로자들이 협상 끝에 석방됐으며 전세기 귀국 방침을 밝혔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와 기업들이 협력해 대미 출장자의 비자 체계 전면 점검 및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계 단체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E‑4 비자 신설 등의 제도 개선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한국인 전문직 대상 E‑4 비자, 또는 호주의 E‑3와 유사한 쿼터에 한국을 추가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비자 관련 정부 부처, 기업, 학계, 의회가 협력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체계적으로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미국 단속 사태는 단순한 출장 절차의 오류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비자 제도 미비와 정부 대응의 정책적 공백이 불러온 구조적 오류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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