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한국전력공사는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원전 건설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단순한 노형 수용 요청에 그치지 않고 "한국형 원전도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정부·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하에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 착공'이라는 중간 목표를 세우고, 2050년까지 원전 설비 용량을 현재 약 100GW에서 400GW로 확대하겠다는 장기 비전을 제시한 상태다. 이를 위해 민·관 채널을 총동원해 한전 등 한국 원전 업계와의 실질적인 협력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에서 열린 APEC 에너지 장관회의에는 제임스 댄리 미국 에너지부 차관이 참석해 산업부 이호현 2차관, 한전 김동철 사장과 연쇄 회담을 진행했다. 댄리 차관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노형 사업에 한국 기업이 시공 등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고 "기업 간 지재권 분쟁이 해소됐고 양국 정부 간 협력 공감대도 마련됐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은 이에 대해 "한국형 APR 계열 원전이 고객의 노형 선택권과 경제성 측면에서 충분히 유리하다"며 "미 정부가 정책 조정을 통해 한국형 원전의 미국 내 참여를 허용해달라"는 공식 요청을 전달했다. 이는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지재권 분쟁을 해소한 뒤에도 한국형 원전을 단독 진출시키는 길은 막힐 수밖에 없는 구조를 우회하려는 전략적 제안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은 외형상 자국 내 원전 생태계 부활을 위한 국내 건설사 참여를 희망하는 것이지만, 한전과 한수원 입장에서는 단순히 시공사 이상의 역할, 즉 한국형 원전 모델이 미국 시장에서 선택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느냐가 핵심 과제다. 한전 관계자는 "국내와 UAE 등 해외 건설 경험을 토대로 APR 원전의 안정적 건설이 가능하다"며 "이 경우 사업비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미국 전력기업들도 경제성을 이유로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한국 측 요청은 단순히 민간 기업 의견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산업부도 "미국 고객들도 원전 노형에 대한 선호가 있을 것이며, 한국의 바라카 원전과 체코 수주 사례 등을 본 미국 유틸리티들이 한국 기업의 참여를 통해 안정적인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간 실무 채널을 통해 정책적 지원도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아울러 대신증권 분석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 측도 인력 부족과 유럽·북미 사업 동시 추진의 어려움을 겪는 만큼, 미국 내 APR1400 건설 수요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이번 민·관 접촉은 미국 정부가 단순히 한국 기업의 시공 참여를 요청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형 원전 자체가 미국 시장에 들어서도록 정책적으로 조정해달라는 요청이 공식화된 첫 사례로 평가된다. 한미 간 원전 협력 관계가 단순한 수출을 넘어서 기술·경제적 선택권 확대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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