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추진·통과시킨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은 한국 자본주의의 동력을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노사관계의 재구성에서 찾겠다는 선언이다. 변화는 진통을 동반한다. 상법 개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인 지배구조 취약을 보완하고 소액주주 권리를 두텁게 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환영을 받지만, 기업들은 경영권 불확실성 확대와 의사결정의 민첩성 저하를 우려한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온도 차도 선명하다. 노동계는 무제한 손배·가압류 관행의 시정을 통해 교섭 책임을 실질화하고 생산적 타협의 조건이 마련될 것이라 기대하는 반면, 경영계는 소송·규제 리스크의 증대, 의사결정 지연, 원·하청 교섭구조의 중층화를 걱정한다. 이에 <투데이신문> 은 총 5편의 기획으로 어느 한쪽의 언어만을 확대하지 않고, 두 법이 기업 가치·투자자 신뢰·노동의 협상력·현장 경쟁력에 미칠 파장을 사실과 해석으로 구분해 점검해 본다. 특히 현장의 각계각층 목소리를 통해 갈등의 간극을 좁히는 실무적 대안을 모색, 한국 경제가 나아갈 미래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이슬 기자】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은 ‘지배구조의 재설계’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들어섰다. 정부는 소액주주 권리와 이사회 견제 장치를 강화해 시장 신뢰를 높이고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완화하겠다는 목표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지배구조 개혁을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환영받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경영권 불확실성과 의사결정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차 상법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기존 1명→최소 2명 이상)를 골자로 한다. 지난 7월 1차 개정에서 회사로 한정됐던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넓힌 데 이은 추가 조치로, 시장에서는 ‘더 센 상법’으로 불린다.
상법 개정, 시장 신뢰 회복의 신호탄
시장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은 “상법 개정이 곧바로 기업 수익성을 높이는 확정적 인과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부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는 투자자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 통과로 기업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1차 개정에서 도입된 ‘이사 주주 충실 의무’가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상징적 조항이었다면, 이번 2차 개정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통해 그 틀을 한층 구체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태준 액트 연구소 소장은 “주주 입장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라며 “법의 취지에 걸맞게, 주주와의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중소 상장사들도 이번 개정을 계기로 소통 방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계·학계, 경영권 불확실성과 소송 리스크 ‘우려’
반면 재계는 경영권 불확실성과 소송 리스크 확대를 우려한다. 지난달 25일 상법개정안 통과 직후 경제 8단체(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는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7월 1차 상법 개정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명했다. 또한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 및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장기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학계의 우려도 나온다. 동국대 경영학과 윤선중 교수는 “상법 개정 취지 자체는 지배주주 중심 의사결정을 제한하고 기업가치를 높이자는 데 있으므로 동의한다”면서도 “기업집단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결정을 내릴 때, 단기 수익성이 불명확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가치 제고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이 경우에도 손해배상소송이나 배임죄 리스크가 제기되면 의사결정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이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면,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면책할 수 있는 경영판단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편중·공시 부실...거버넌스 개혁 과제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이 선언적 신호에 머물거나 실효성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초대형 상장사의 경우 개인 주주가 의결권을 모아 경영에 영향을 행사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 소장은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서 개인 주주들이 3%를 모으려면 백만 단위 이상이 결집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는 기관 중심의 견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개정은 소액 주주 권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기관투자자가 회사를 견제할 수 있는 이사를 선임하는 길을 넓혀주는 것”이라며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의 뜻에 동의해 힘을 보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의 적용 범위가 대기업에 국한돼 있다는 점도 보완 과제로 꼽힌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고은정 부교수는 “공시자료 부실, 폐쇄적인 경영구조는 주가를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이는 곧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이어졌다”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개정안이 일부 대기업에만 적용돼 실효성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소·코스닥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 단계에서는 선언적 성격이 강하지만, 정부가 주주권 강화 의지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법리적으로 의견이 엇갈렸던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의 경우 향후 판례와 구체적 사건을 통해 적용 범위가 명확해져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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