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최근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했다. 이번 단속으로 약 475명이 체포됐으며, 그 중 300명 이상이 한국인으로 확인됐다.
헬리콥터가 상공을 선회하고 주 경찰이 진입로를 차단하는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동원은 단일 사업장에서 벌어진 이민 단속으로는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공장 건설이 일시 중단되는 등 현지 분위기는 크게 술렁였다.
▲“범죄자 아닌 근로자 겨냥”…민주당·시민단체 강력 비판
민주당 내 아시아태평양계 코커스(CAPAC) 소속 의원 20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위험한 범죄자 대신 유색인종 공동체와 직장의 이민자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이런 무분별한 조치는 가족을 파괴하고 지역 경제를 침체시키며 글로벌 파트너의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규탄했다.
뉴저지 출신 한국계 앤디 김 상원의원, 캘리포니아 출신 데이브 민 하원의원 등 한국계 의원들도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민주·조지아)은 “이 단속이 대통령의 이민 정책 우선순위인 ‘위험 범죄자 축출’에 부합하는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이민 노동자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한 뒤, 단속이 닥치면 근로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韓정부 “부당한 침해”…전세기 투입해 귀국 추진
서울에서도 파장이 거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국민 권익과 대미 투자 기업의 경제 활동이 부당하게 침해되어선 안 된다”며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대응을 지시했다. 외교부는 워싱턴과 애틀랜타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현장 지원팀을 꾸려 구금자 보호에 나섰고, 구금된 한국인 노동자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기로 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민 불안을 최소화하고 법적 절차에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 “한·미 관계 시험대 올라...韓기업은 최대투자자, 신뢰 훼손”
외신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불법체류 단속이 아니라 동맹 신뢰와 대규모 투자 협력의 시험대로 규정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금은 한·미 관계가 민감한 시점”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이 미국의 상호관세를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사실을 언급했다. WP는 “이 대규모 투자는 현대·LG를 비롯한 한국 주요 기업들이 주도하는데, 정작 미국 당국이 공장을 급습해 수백 명을 체포한 것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게 깊은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WP는 “조지아주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단속의 정치적 동기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신규 프로젝트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NYT는 “2023년 기준으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신규 투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며, 이번 사건이 “신뢰를 훼손하고 분노를 부채질하는 등 양국 관계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해외 기업들에게 이번 단속은 정책적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상기시키는 신호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좀 더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FT는 “엄격한 이민 단속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정치에 유리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대만 등 아시아권 기업들에 ‘정책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는 결국 미국 내 제조업 확대 전략에도 역풍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The Guardian)은 LG에너지솔루션 직원 47명이 단속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을 주목하며, “이번 사건은 한국 정부의 강력 대응을 촉발시켰고, 주한 미국 대사관과 서울 외교부가 전례 없는 긴급 협상에 나서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 공장이 43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경제적 충격을 넘어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고 전했다.
로이터(Reuters)는 한국 외교부가 “기업의 경제 활동과 국민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어선 안 된다”고 밝힌 점을 인용하며, “한국 정부가 워싱턴 방문까지 검토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또 “이번 사건은 미국 내에서 단일 장소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단속 사례로 기록됐다”며, 그만큼 상징적 파장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졌다. 마크 킴 한인연구소 회장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미국 현지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공권력이 이를 급습하는 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태미 오버비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 역시 “이번 사건은 아시아권 기업들에 정책 리스크로 작용해 미국 내 신규 투자 계획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신뢰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미국 제조업 확대 전략에도 역풍이 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단속은 표면적으로는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한·미 양국 간 신뢰와 경제 협력 기반에 큰 균열을 낳았다. 민주당 의원들과 전문가들은 “범죄 억제 효과는 미미한 반면 외국인 투자와 동맹 신뢰에 치명적 손실을 입혔다”며 무리한 조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Copyright ⓒ 뉴스로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