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하늘을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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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하늘을 보는 시간

경기일보 2025-09-07 19:1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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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하늘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하늘 바라기는 어느새 습관이 됐다. 내가 유난히 하늘을 본다는 사실은 친구 덕분에 알았다. “너는 하늘 얘기를 자주 해. 그래서 나도 하늘을 보곤 해.”

 

그 말을 듣고 사진첩을 열어 보니 무심코 찍은 것들 중 가장 많은 게 하늘이었다. 한강에서 떠오르던 해, 빌딩 사이 조각처럼 걸린 하늘, 비 오는 날의 아득한 하늘, 마음이 뚫리듯 시원했던 하늘.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생각을 멈추고 굳이 꺼내지 않던 감정을 여러 빛깔로 펼쳐 보게 됐다. 도시에서 고개를 든다는 건 쉽지 않다. 휴대전화와 일정, 모니터, 사람들의 얼굴에 시선이 묶여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다는 것을. 묵묵히 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짝사랑하는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지곤 한다.

 

나도 예전에는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면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퇴근길, 창밖의 노을을 보고 멈춰 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본 게 언제였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도시는 우리의 시선을 아래로 잡아끈다. 드물게 올려다봐도 금세 외면한다. 대부분은 휴가나 시골길에서 “와, 하늘 좀 봐” 하며 숙제를 하듯 올려다볼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하다. 세상은 열띤 주장과 떠들썩함, 끝없는 볼거리와 대화로 가득하니 말이다. 널찍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유튜브를 보며 밤을 새우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 왜 일까 곱씹어 본다. 거창하게 말하면 하늘은 자유와 평등을 닮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기나긴 싸움에 지쳐 있을 때 하늘이 내게 말을 건 것일지도 모른다. “숨이 가쁘면 언제든 나를 봐. 마음껏 구경만 해도 돼.” 하늘은 가진 것과 잃은 것, 도시와 시골, 아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는다. 수많은 갈라짐, 편 나누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 어딘가에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소망이 숨어 있다. 나도 그러하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찾아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떠다니는 구름을 따라 시선을 흘리며 내 마음도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순간만으로도 마음속에 가벼운 여백이 생긴다.

 

하늘은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거울처럼 우리를 비춘다. 또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낮과 밤, 새벽과 아침을 연다. 그 앞에서 나는 인간의 삶과 평화를 떠올리는 경지에 닿은 듯한 경험을 한다. 그 순간이면 언제나 지극히 사랑하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1996년)’가 떠오른다.전쟁 속 인간의 연약함과 사랑, 평등과 평화, 그리움과 질투,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담은 작품이다. 죽어가는 주인공이 남긴 글귀는 마치 지금도 고개만 들면 만날 수 있는 하늘 같다. “우린 진정한 국가예요. 강한 자들의 이름으로 지도에 그려진 섬이 아니에요.” 하늘처럼 경계 없는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하늘은 아마 세상의 전쟁과 슬픔, 환희와 역사를 모두 내려다봤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의 크고 작은 일상 속에서 언제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다. 그 무한한 시야 속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고개를 들어 작고 큰 숨을 내쉰다. 그 소소한 순간만으로도 평화와 화해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하다. 그리고 그 위에 머문 나의 시선과 마음은 잠시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하늘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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