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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김혜진 작가의 ‘명품아파트의 법칙’이라는 책은 공동주택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말로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파트를 공급과 가격 측면만 보고 이야기했으나, 김작가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자 측면에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공동주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노인층이 많아지고 있고, 아이와 청년층은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아파트마다 공동시설로서 어린이집과 노인정은 필수다. 어린이집은 어린이의 감소로 필요가 없어지고 있으나, 노인정은 공공성과 사적 운영 사이에서 갈등을 빚으며, 주민들 사이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일부 노인들만의 전유공간이 되어 버린 노인정의 문제를 아파트 공동체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노인정은 주택법시행령 제55조에 의하여 ‘공동주택의 주민공동시설’로 지정되어 있어 100세대 이상의 아파트에는 필수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설치 후 운영은 노인복지법과 지방조례에 따라 노인회 분회가 운영한다.
현실은 노인회가 노인정을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불만이 많다. 입주자대표회의의 관리 손길은 닿지 않고, 회계와 운영은 불투명하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노인정의 이용내역과 회계처리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하더라도 노인정을 운영하는 노인들이 이를 거절하고 있다. 노인정이 특정 인물의 주도 아래 배타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노인정은 ‘갈등의 온상’이 되었고, 많은 입주자들에게 노인정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계륵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노인이 늘어나는 시대에 노인정이라는 시설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정은 다양한 세대와 노인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60대 신노년층은 활발한 활동을 원하지만, 노인정은 여전히 장기·바둑·TV를 보는 더 늙은 노년층이 자리 잡고 있다. 젊은 노인은 외면하고, 초고령층만 남으니 공간은 더 닫히고 소통은 끊어진다. 세대 간 연결의 거점이 되어야 할 노인정이 오히려 단절을 심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혜진 작가가 잠실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노인정 관계자들과 벌인 분쟁은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정을 ‘노인만의 전용실’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쓰는 공동체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몇 가지 해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 공동주택의 이용 실태가 강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제언한다.
첫째, 입주자대표회의의 관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노인정의 관리를 대한노인회가 맡고 있는데 노인회에게만 관리를 맡길 수 없다. 아파트 전체를 관리하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관리 아래 노인회가 협력하고, 회계와 운영에 대하여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 노인정의 관리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관리규약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노인정 시설을 복합 커뮤니티 센터로 전환해야 한다. 이름부터 ‘노인정’이 아닌 노인이라는 이름을 뺀 ‘커뮤니티 라운지’와 같은 중립적 호칭으로 바꾸고, 청년·가족·노인이 함께 쓰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낮에는 노인이, 저녁에는 청년도 함께 쓰고, 주말에는 공동주택 입주자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인정은 비어 있는 시간이 많은데 입주자들이 다수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공개되어야 한다.
셋째, 프로그램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 프로그램은 노인만을 상대로 해서는 안 된다. 건강 강좌, 스마트폰 교육, 세대 간 요리 교실, 손주 돌봄 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입주자 모두의 욕구를 만족할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지자체의 공공 지원에 조건을 붙여야 한다. 지자체와 입주자대표회의가 운영비를 지원하되, 개방 시간 확보, 세대 통합 프로그램 운영, 회계 공개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노인정이 본래의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노인정을 폐쇄하고 공동주택 입주자들이 상시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노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인이 이동하기 편하게 장애가 없는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노인이 다수가 되는 시대가 되고, 노인도 다양한 세대로 나뉘어 공존하게 된다. 노인만 사용하는 시설은 노인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세대가 같이 사용하고 숨 쉬는 열린 공간이 될 때 공동주택의 커뮤니티가 더 살아날 것이다. 지금 노인정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므로 노인들이 그 공간을 양보하고 입주자들과 같이 사용하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노인정은 공동주택 내 갈등의 공간만 될 뿐이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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