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특별기획] '노란봉투법'과 'K-로봇'의 동상이몽...기로에 선 K-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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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락 특별기획] '노란봉투법'과 'K-로봇'의 동상이몽...기로에 선 K-제조업

뉴스락 2025-09-06 17:40: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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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락]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선의'가 현장에서 노동자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원청까지 넓히며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풀었지만, 비슷한 시기 정부는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기업들에 '탈(脫)인간' 자동화의 명분을 줬다.

노동권 강화와 미래 산업 육성이라는 두 정책의 엇박자 속에서, 기업들은 노조 리스크를 피해 '사람 없는 공장'과 '생산기지 해외 이전'으로 빠르게 선회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작 다수의 중소 협력업체들은 고사 위기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뉴스락>은 정책 엇박자 속에서 제조업 생태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해본다.

챗GPT 이미지 생성.
챗GPT 이미지 생성.

법 바뀌자마자 ‘진짜 사장’ 찾는다...노란봉투법 후폭풍, 산업계 긴장

(왼쪽)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제공. (오른쪽)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지난달 29일 울산사업장에서 부분 파업을 벌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뉴스락]
(왼쪽)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제공. (오른쪽)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지난달 29일 울산사업장에서 부분 파업을 벌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뉴스락]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불과 며칠, 한국 산업계에 예상보다 빠른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그동안 하청업체와만 교섭해야 했던 비정규직 노조들이 법적 근거를 확보하자마자 '진짜 사장'을 찾아 원청 기업 문을 직접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1892명은 지난 8월 25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대제철 경영진을 집단 고소하며 "이제 '진짜 사장'과 직접 얘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2021년 고용노동부가 현대제철에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내렸고, 최근 법원도 현대제철을 교섭 당사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회사가 하청업체로의 자회사 전환을 통해 직접고용을 회피해왔다고 주장한다.

이 움직임은 조선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현대삼호중공업지회 등 5개 노조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개별 기업을 넘어 업종 차원의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선업종노조연대 관계자는 "회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상황에서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처우 개선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카카오 노조는 활동 반경을 판교에서 국회로 넓히며 모기업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양사 노조는 오는 9일 국회에서 '자본시장 신뢰를 흔드는 IT 거버넌스' 토론회를 열고 원·하청 이원화 구조로 인한 근로자 처우 차별 문제를 공론화할 예정이다.

정부는 법 시행 전 6개월 유예기간을 두고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교섭 절차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향후 6개월간의 시행 준비기간 동안 노사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업계는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사용자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되면 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경제 6단체 역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노동쟁의 대상이 어디까지 해당하는지 불분명해 향후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와 '로봇'의 딜레마...노동 보호가 일자리를 위협하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로봇투자 및 해외이전 현황. [뉴스락 편집]
국내 주요 대기업의 로봇투자 및 해외이전 현황. [뉴스락 편집]

"파업 한 번 막을 돈이면 로봇 수십 대를 들일 수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둔 재계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말이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장하려던 '노란봉투법'이 역설적으로 현장에서 노동자의 자리를 밀어내는 '탈(脫)인간' 자동화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한 달 새 내놓은 두 정책이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8월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에 이어, 곧바로 'AI 3대 강국' 달성을 위한 로봇 분야에 5,510억원 등 대규모 AI 투자를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미래 먹거리 확보'라 설명하지만, 기업들은 이 두 정책의 틈새에서 '노동 리스크 회피'라는 다른 셈법을 찾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연간 수조원의 비용 증가를 추산하며, 로봇 투자를 생존 전략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의 움직임은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기반의 첨단 반도체 설계 공정 개발과 함께 제조 자동화·로봇 기술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스마트 팩토리 구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사내 챗봇 '엘지니'를 AI 에이전트로 고도화해 향후 2~3년 내 전체 업무의 약 30%를 자동화하겠다고 밝혔으며, SK하이닉스는 2027년 가동 목표인 용인 클러스터에 AI 기반의 '완전 자동화' 팹(공장)을 구축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에 도입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스팟' 로봇 2대의 운용 범위를 확대하며 추가 도입을 검토 중이다. HD현대는 용접 로봇 기술 개발과 휴머노이드 도입으로 조선소 자동화에 나섰다.

자동화를 넘어 아예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탈(脫)한국'도 본격화됐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 카라왕 산업단지에 연 10GWh 규모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준공하며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에 나섰다. HD현대는 필리핀 수빅만 조선소를 10년 임대해 2026년부터 대량 건조에 나선다.

SK온은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세액공제를 기대하며 현대차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시작했다.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고 있다.

국내의 강화된 노동 규제를 피해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노동·자본 대립 구도를 넘어선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현욱 변호사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AI 대전환이라는 역사적 변곡점에서 기존 방식의 대응은 불가능하다"며 "제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AI 기반 스마트 팩토리는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노동 보호도 중요하지만, 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으면 노동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며  "공동선이라는 큰 목표 아래 상생 협력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을' 보호하려다 '병·정' 위기...제조업 생태계 흔들

노조법 개정 관련 중소기업인 간담회 현장.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뉴스락]
노조법 개정 관련 중소기업인 간담회 현장.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뉴스락]

'을(乙)'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법이 역설적으로 '병(丙)'과 '정(丁)'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국내 제조업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책의 근본적인 모순과 뒤틀린 노사관계가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노동권 강화라는 선의가 '고용 없는 성장'과 '협력사 줄도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동차, 조선 산업처럼 소수 원청 대기업을 중심으로 다수의 1·2·3차 협력업체들이 연결된 한국의 다단계 하청 구조는 이러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현대차의 경우 1차 협력업체만 300여개에 달하고, 이들과 연결된 2·3차 업체까지 합치면 수천 개 기업이 하나의 생산 네트워크를 이룬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원청의 노사갈등이나 생산차질이 전체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노조법 개정에 대한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 자동차와 조선업 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라며 정책 재검토를 요구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원청에서 파업이 발생해 공장가동률이 떨어지면 협력사 매출과 근로자 소득까지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며 "2차, 3차 협력업체에 미치는 연쇄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을 비롯한 각 업종별 협동조합들도 "원청이 무너지면 하청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대다수 중소 협력업체들이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청을 따라 해외로 이전할 자본이나 기술력을 갖춘 곳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국내에 남아 일감 감소를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현재 상황을 '정책 모순'으로 규정했다. 

라 원장은 "노란봉투법 통과로 자동화가 더욱 촉진될 것"이라며 "현재도 근로자 만명당 산업용 로봇이 1012대로 전세계 8위 수준인데, 중장기적으로 자동화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원청 대상 집단교섭권 확대가 미치는 연쇄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라 원장은 "현대자동차가 1차 하청과 계약을 체결해도 2·3·4·5차까지 전부 원청에 대해 교섭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고용노동부에서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독일 모델 역시 국내에 바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이 강력한 노조(IG메탈)에도 불구하고 산업 경쟁력을 지키는 힘은, 대립이 아닌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협력적 노사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세계경제포럼(WEF)의 2019년 노사협력 지수에서 독일이 30위인 반면 한국은 130위(141개국 중)로 최하위권”이라며 근본적인 차이를 꼬집었다. 

그는 “파업 시 대체근로 부분 허용 같은 제도적 균형점을 찾고, 노사분규 없이 타결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신뢰 회복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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