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드라마 ‘모래시계’와 그 배경이 된 ‘슬롯머신 비리 사건’을 재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지난 4일 방송된 ‘꼬꼬무’ 191회는 ‘특집 : 더 레전드 2’ 편으로 꾸며져, 1990년대 전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았던 드라마 ‘모래시계’와 이를 둘러싼 충격적인 실화를 다뤘다. 이날 방송에는 가수 화사, 배우 장동윤, 현봉식이 리스너로 참여해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실제 사건을 함께 되짚었다.
■ “귀가 시계”로 불린 레전드 드라마 ‘모래시계’
1995년 1월, 저녁이 되면 거리의 불이 꺼지듯 시민들이 자취를 감췄다. 약속을 미루고 집으로 향하게 만든 드라마, 바로 ‘모래시계’였다.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이 작품은 배우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 등이 출연해 권력과 조직폭력, 카지노를 소재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드라마 속 윤재용 회장 역을 맡은 배우 박근형은 “카지노가 드라마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당시 파격적인 소재 선택을 떠올렸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모래시계는 곧 귀가 시계’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 “드라마가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실제 사건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
‘모래시계’의 모티브는 방송 2년 전 발생한 ‘슬롯머신 비리 사건’이었다. 사건의 중심 인물은 암표상 출신으로 전자오락기, 나이트클럽, 카지노 사업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이었다. 그는 현재 가치로 약 1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덕진은 드라마 속 윤재용 회장의 실제 모델로 지목되며, 배우 박근형은 “그 분을 멀리서 본 적이 있다”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배우로서 연기하는 데 신이 났다”고 전했다.
■ 조직폭력, 권력, 뇌물…‘슬롯머신 비리’ 전말 공개
정덕진은 서방파 김태촌을 비롯한 조직폭력배와 고위 권력층까지 폭넓게 유착해 있었다. 그는 정치권 인사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제공했으며, 자신은 이를 “원자탄을 사용했다”고 표현해 충격을 안겼다.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코드명 P’는 노태우 정권 당시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박철언 전 의원이었다. 그는 총 6억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났고, 이 사건으로 지방경찰청장, 치안감 등 고위 공직자 130여 명이 줄줄이 적발됐다. 정덕진의 최종 커넥션은 국가안전기획부 기조실장 엄삼탁으로 밝혀졌다.
배우 장동윤은 “배후가 어마어마하다”며 놀라움을 표했고, 화사는 “비참한 말로”라고 탄식했다. 정덕진은 사건 이후 5년 만에 필리핀에서 도박 중독자로 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 드라마와 현실, 같은 교훈…“정직하게 살아야”
방송 말미, 출연진들은 “나쁜 짓을 하면 한때는 빛을 볼 수 있지만 결국 삶이 비루해진다”며 입을 모았다. 장동윤은 “정직하게 살고 싶다”고 다짐했고, 현봉식은 “반복되는 역사에서 어떻게 살아갈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모래시계’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군부독재, 삼청교육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금기시되던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그 무게감은 시청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줬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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