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전세보증 한도 산정 기준을 갑작스럽게 강화하면서 연립·다세대·다가구 등 비(非)아파트 임대 시장이 거센 충격에 휩싸였다.
업계에서는 일명 '126% 룰'이 적용되면서 새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막히자,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서울 관악구에서 다세대주택을 운영하는 A씨는 "새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지 못하니 기존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몇 억 원을 당장 마련할 수 없어 막막하다"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가을부터는 전세 매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급증할 수 있다"라고 토로했다.
HF는 지난 8월 28일 별도 유예 기간 없이 전세보증 기준을 공시가격의 126%로 축소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공시가격의 150%에 LTV(담보인정비율) 90%를 곱한 ‘135% 룰’을 기준으로 삼아 왔는데, 이를 통해 다른 보증기관에서 보증이 거절된 경우에도 HF가 일종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HF 역시 문턱이 높아지면서 전세보증 이용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3억 원인 주택에 대해 보증 가능한 한도는 3억 7,800만 원으로 축소된다.
만약 해당 주택에 이미 2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고, 세입자가 2억 원의 전세 계약을 원하는 경우 총액이 한도를 넘어서면서 보증이 거절되는 구조다.
이러한 규제는 비아파트 유형에서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빌라나 다세대주택은 공시가격이 시세 대비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고, 공동담보 구조로 인해 한 세대의 위험도가 낮더라도 전체 건물의 담보총액이 기준을 초과하면 보증이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세보증 한도 강화돼 임대사업자들 '패닉'
경기도에서 다세대 주택을 운영 중인 또 다른 임대사업자 김 모 씨는 "규제가 갑작스럽게 적용돼 대책 마련 시간이 전혀 없었다"라며 "보증이 안 되는 세대는 전세를 포기하고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라고 호소했다.
마포구 공덕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요즘 전세 계약의 첫 번째 조건이 보증보험 가능 여부"라며 "보증이 안 되면 아예 전세 계약 자체가 성사되지 않고, 집주인들 역시 월세 전환을 고려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세사기 차단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현장 충격을 줄이기 위한 유예기간 및 제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비아파트 시장은 구조적으로 공시가격 대비 전세금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두고 주택 유형별로 탄력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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