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식당과 카페들이 늘어선 거리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박민호(37·남) 씨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마케팅 부서 과장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 8000만원과 매년 승진을 바라볼 수 있는 안정적인 커리어를 가졌음에도 그는 2023년 11월 사표를 던지고 '사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자영업자가 되면 회사 다닐 때보다 스트레스가 덜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박 씨는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끝없는 보고서 작성, 상사들의 과도한 요구와 조직 내 정치 싸움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소회했다.
박 씨는 본인 가게를 연 지 불과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창업 첫 몇 달간 매출은 월 평균 800만원, 순이익은 20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인 고통은 직장인 시절 보다 훨씬 컸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기존 낮 시간대 식당 운영과 더불어 밤 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열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 직원을 줄이면서 직접 가게 일을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가족과 만나는 시간은 예전 직장인 시절보다 눈에 띄게 줄었고 만성 요추 염좌 진단을 받는 등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30·40 창업 러시의 민낯 "회사만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자영업 현실은 지옥"
대출비교 플랫폼 핀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출 약정 사용자 중 직장인에서 개인사업자로 직업이 바뀐 사용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50% 늘었다. 직장인에서 개인사업자로 전환한 이들 중 77.5%는 30·40대다. 전체 연령대 중 직장을 퇴사하고 창업에 나선 이들 가운데 5명 중 4명이 30·40세대라는 의미다. 통상 알려진 '정년 퇴직' 시점과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퇴사 후 창업'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선택의 결과는 처음 그들이 생각한 모습과는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AI 세금신고 앱 '쌤157'이 최근 5년간(2020~2024년) 개인사업자 회원들의 사업 유지 기간을 분석한 결과, 평균 생존 기간은 2.8년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결국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경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사업 지속 기간별로 보면 창업 후 1년 미만에 폐업을 결정한 비율이 34.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합정동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지연 씨(34·여)는 2023년 5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자의 길을 택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내 점포를 운영한다는 설렘이 컸다"며 "하지만 초기 투자비용과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가 계속 나가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고 매출도 들쭉날쭉하니 불안감도 점차 커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회사를 다닐 때는 잘하든 못하든 정해진 돈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매일 매일이 다르다"며 "매출을 올리려고 이벤트도 하고 배달 서비스도 시작했지만 수익이 크게 나아지진 않아 밤잠까지 설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덕역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준호 씨(38·남)는 2022년 말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IT업계에서 10년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해왔지만 반복되는 야근과 불규칙한 근무 시간에 지쳐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게 계기였다. 이 씨는 "처음에는 평소 즐겨하던 요리를 하면서 손님들과 소통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며 "그러나 조금 지나고 나니 예상치 못한 고정비 부담과 재료비 상승, 들쭉날쭉한 매출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성토했다.
이 씨에 따르면 주점은 월 평균 매출이 500만원 정도지만 재료비(120만원), 임대료(100만원), 인건비(80만원), 전기·가스·기타(50만원) 등을 빼면 순이익은 15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직장인 때 월급과 비교하면 수익이 확실히 줄었고 매달 적자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상황이다"며 "처음 가게를 차릴 때는 흔쾌히 허락했던 아내는 생활이 너무 어렵다 보니 퇴근 후에 또 다른 일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란 생각을 수십 번을 했고 실제로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경력 단절 때문인지 그 마저도 쉽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가게 오픈 순간부터 휴일·연차 사라져" 퇴사 후 창업 자영업자, 삶의 질 만족도 낙제점
직장인 시절보다 훨씬 더 큰돈을 버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그들도 나름 상당한 고충을 안고 있었다.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성대역 인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이삭 씨(31·남)는 중소기업을 퇴사한 뒤 몇 년간 미용 공부에 매진했고 2023년 초 매장을 차렸다. 처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네이버 광고 마케팅과 '남성 커트 전문'이라는 특수성을 내세운 덕에 안정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특히 대학가의 입지적 특성을 살려 대학생 수요를 적극 공략한 게 주요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안정궤도에 올라선 것 일뿐 여전히 김 씨는 여러 가지 고충을 안고 있다. 가장 큰 고충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붕괴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김 씨는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보통 한 달에 순수익 700만 정도를 벌고 매출이 좋은 달에는 순수익 1000만원을 벌 때도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직장인 때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현재 주 6일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매일 일하고 있다"며 "화요일 하루만 쉬는데도 손님들이 시술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업을 하려면 직장 월급에 최소 3배 이상은 벌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쉽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재무 설계, 경영, 인사관리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일하고 싶다면 차라리 회사를 다니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 씨는 "현재는 마음이 맞는 동생 한 명과 함께 사업을 키워가고 있지만 가장 큰 걱정은 그 동생이 언제 자기 사업을 하러 독립할지 모른다는 점이다"며 "체력적인 고충과 일과 삶의 불균형, 여기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르데스크가 만난 대다수의 30·40 창업자들은 "시간도, 돈도, 자유도 모두 줄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 스트레스를 피했지만 오히려 모든 리스크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생존 게임의 현실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일과 삶의 만족도 조사'를 시행한 결과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직업 만족도는 51.6점에 그쳤다. 만족도는 설문 대상자가 1~10점까지 척도를 답한 값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것이다. 또한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소상인이 체감하는 노동강도는 65.6점(100점 만점, 높을수록 강함)으로 비교적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3040 세대의 창업 열풍은 자아실현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일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창업 후 직면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된 경우가 많다"며 "직장은 전쟁터이고 나오면 지옥이라는 말이 있듯이 창업을 통해 얻는 수입이 직장인 시절의 안정적인 월급에 비해 불안정하고, 예상치 못한 고정비와 인건비로 인한 매출 변동 등은 창업자에게 큰 압박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창업을 고려하는 이들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미리 갖추고 이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창업에 뛰어들기 전에 사업 아이템뿐만 아니라 사업 운영에 필요한 재무적·법적·인사적 지식도 충분히 갖춰야 하며 이에 대한 명확한 시스템도 미리 구축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업이 안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예상보다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며 "창업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책임과 불안정이 동반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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