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위해 모아온 은퇴자금 5억원을 안전하다 믿고 투자했지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습니다."
국내 대형 유통기업 홈플러스가 지난 3월 경영 부실을 이유로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투자자와 근로자들의 피해가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전자단기사채(전단채)에 투자한 개인들은 약속된 상환을 받지 못해 은퇴자금과 생계자금을 잃었고, 매장 폐점으로 다수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 등 생활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5일 오전 11시 홈플러스 물품구매전단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국민연금 충정로사옥 앞에서 '홈플러스 파탄, 국민연금 투자실패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스튜어드십코드 사모펀드 확대 적용 및 MBK에 대한 3년간 투자 금지를 촉구했다. 이날 비대위는 국민연금에게 전달하는 요구 및 제안서를 제출했다.
현장에선 홈플러스가 망하지 않으면 절대 떼일 리 없다는 말을 듣고 전단채에 투자했다 낭패를 본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사업자 황인성 씨(70·남)는 "몇 개월 뒤 상환한다는 말을 믿고 사업자금 9억원을 먼저 투자했지만, 상환이 계속 미뤄져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앞으로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호소했다.
은퇴자금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도 속출했다. 박정현 씨(59·여·가명)는 "노후를 위해 모은 자금을 평소 거래하던 증권사를 통해 유동화 전단채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 당시 원금 손실 가능성은 안내받았지만, 증권사 직원이 '형식적인 문구일 뿐'이라고 설명해 홈플러스 전단채에 투자했다"며 "그러나 홈플러스 회생 이후 채권자 등록조차 못했고, 투자금 중 일부는 아픈 아이의 수술비였는데 돌려받지 못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가정주부 박옥금 씨(59·여)는 "오랜 세월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과 남편의 수입, 집을 팔아 마련한 은퇴자금 5억원을 하나은행을 통해 투자했다"며 "은행 직원은 '하나증권의 안전한 상품' 중 하나라며 투자를 권유했고, 특히 카드대금이라 안전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저는 소비자가 사용한 카드대금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걸 유동화시켜 만든 채권이었다"며 "직원은 계속해서 '홈플러스가 망하겠느냐,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주호 씨(45·남·가명)의 어머니도 평생 모은 노후 자금 2억원을 홈플러스 전단채에 투자했다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그는 "어머니가 평소 알고 지내던 증권사 직원의 소개로 가입했는데, 홈플러스 카드대금 채권이라 설명해 신영증권 발행 채권인 줄 몰랐다"며 "계약을 망설이자 직원은 '주식보다 안전하고, 정부가 유동성 공급을 보장한다'는 장문의 메시지까지 보내 설득했다"고 폭로했다.
금전적 피해뿐만 아니라 생활 기반을 잃은 근로자도 속출했다. 지난 1일 폐점한 홈플러스 안산선부점에서 5년간 판매원으로 근무한 박지원 씨(42·여)는 "아직 자녀들이 어려 돈이 많이 필요한데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폐점 사실조차 언론을 통해 알았을 정도로 회사는 직원들에게 정보를 숨겼다"고 비판했다.
폐점 예정인 시흥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3일 폐점 대상에 포함됐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공지되지 않아 고객과 상인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매장은 여전히 고객들로 붐비지만 일부 식당가는 이미 영업을 중단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입점 상인들조차 "정확히 언제 문을 닫는지 몰라 대책을 세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안수용 마트노조 지부장은 "10년 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때도 1만명이 정리해고 됐다"며 "당시 주로 외주 보안 인력이 대상이었고 그 공백을 정규직 직원들이 떠안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년이 다가온 직원들이 늘어도 신규 채용은 이뤄지지 않아 업무 부담만 커졌다"며 "결국 과중한 업무로 해고된 직원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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