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하라사막의 열기를 그대로 받고 있는 남유럽
유럽의 여름은 더 이상 낭만적인 휴가철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해마다 기록이 갱신되는 폭염은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를 넘어 독일과 북유럽까지 파고들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보기 드물던 40도 이상의 기온은 이제 유럽 남부에선 일상이 되었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한여름이면 체감온도가 45도를 넘는 날이 속출한다.
대규모 산불은 마을을 집어삼키고, 농작물은 고온과 가뭄으로 시들어간다. 한때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유럽의 여름 해변은 이제는 폭염을 피할 그늘을 찾는 생존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상이변이 단순히 유럽 내부의 기후 변화로만 설명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 배후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시작된 뜨거운 공기의 북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사막화와 가뭄이 유럽 폭염을 키우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 과학자들은 사하라 사막에서 발생하는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밀려드는 과정을 추적해왔다. 제트기류가 약화되는 시기, 사하라의 열기는 마치 거대한 화염 벽처럼 북상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도달하고, 이후 프랑스와 독일까지 폭염을 확산시킨다.
이른바 ‘사하라 히트 돔(heat dome)’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하라 사막은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확장되고 있다. 북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녹지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대기 중 반사열을 증가시켜 더 강한 열기를 생성한다. 결국 사막화가 진행될수록 유럽의 폭염도 강렬해지고, 발생 빈도 역시 잦아지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그 자체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사헬 지역은 1년에 절반 이상이 가뭄 상태로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농업에 의존해온 수많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가축은 물 부족으로 쓰러지고, 농지는 메말라 식량 생산량이 급감한다. 이는 곧바로 난민 문제로 이어지며, 수만 명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유럽은 지중해를 건너 몰려드는 이들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점점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정치·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후 난민 문제는 단순한 인도적 차원을 넘어, 유럽 사회의 갈등과 극우 정치의 성장에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는 과거 유럽과 아프리카를 구분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 경계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중해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대기 흐름이 왜곡되고, 폭염뿐만 아니라 폭우와 홍수까지 동반하는 극단적 기후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 북부에선 몇 달 치 비가 하루 만에 쏟아지며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고, 이는 바로 지중해 온난화와 연관된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사하라의 열풍은 더 멀리 북상해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까지 도달하며 전례 없는 폭염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대기 순환 시스템 붕괴를 의미한다.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는 유럽과 아프리카 모두에서 치명적이다.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전력망은 에어컨 수요 폭발로 한계에 몰린다.
▲ 아프리카 사헬지구 1300만명이 기후위기로 죽어가고 있다. (사진=ytn 유투브 화면 캡쳐)
농작물 생산은 불안정해지고 식량 가격은 치솟으며, 관광산업은 폭염으로 타격을 입는다. 아프리카에서는 농업 기반이 붕괴되면서 대규모 이주가 불가피해지고, 물과 식량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격화된다.
이 두 현상은 서로 연결돼 악순환을 만든다. 유럽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프리카의 사막화와 난민 증가는 계속될 것이고, 이는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심각하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이어진다면, 유럽은 매 10년마다 1도 이상 기온이 상승하는 초유의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폭염 시즌이 몇 달씩 지속되고, 유럽 전역이 여름 내내 고온에 시달릴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아프리카는 인구 증가와 기후 악화가 겹쳐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배출 지역이 될 수 있다. 결국 유럽과 아프리카의 기후 문제는 분리된 사안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위기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유럽과 아프리카가 공동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아프리카 사막화 방지에 대한 국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 기후위기로 인해 고통받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발 원조가 아니라, 유럽의 폭염을 막는 직접적 방법이기도 하다. 둘째, 재생에너지 협력 확대가 절실하다. 태양광과 풍력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와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유럽이 손을 잡는다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위기를 완화할 수 있다. 셋째, 기후 난민에 대한 인도적·정책적 대응이 강화돼야 한다. 난민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이득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유럽 내부의 갈등과 불안을 증폭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결국 사하라의 열기가 유럽을 뒤덮는 현상은, 지구가 하나의 기후 시스템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유럽이 아프리카와 손잡지 않는다면, 폭염은 더욱 심해지고 그 피해는 국경을 넘어 확산될 것이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막의 열풍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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