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배우가 되고 싶어서 가출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고집스럽게 꿈을 위해 달렸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하나씩 포기하게 되더군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뉴스컬처 NCTV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신개념 인터뷰쇼 '공형진이 만난 사람: 공유시대'가 첫 문을 활짝 열었다. 배우이자, 경영자, 교수, 그리고 한 아내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 신현준(56)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영화를 좋아한 까까머리 소년에서 톱 배우를 거쳐 여전히 K-컬처의 최전선에 있는 그는 이제 가족과 신앙에 몸을 맡기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공유시대' MC이자 배우 공형진이 그간 다수의 작품을 함께하고 카메라 밖에서도 진한 우정을 다져온 배우 신현준을 만났다. 신현준의 서울 자택에서 안산 대부도에 위치한 더헤븐리조트까지 이동하며 근황 및 가족, 아내와의 첫 만남 '썰', 남다른 신앙심 등을 풀어냈다.
이어 더헤븐리조트 펜트하우스에서 35년 연기 인생, 최근 1주기를 맞은 고(故) 김수미와 관련해 못다 한 이야기도 전했다. 그리고 50대 나이에도 변함없는 건강미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원동력, 자신만의 건강관리 비법도 밝혔다. 여기에 동료 공형진을 향한 진심, 시청자를 향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까지 아낌없이 전했다.
[NCTV_공유시대] 공형진이 만난 사람...배우 신현준 2편
인터뷰1에 이어 계속
공형진: 대부도 바다가 3면으로 보이고 '천혜의 자연'이 인상적인 더헤븐 리조트로 자리를 옮겼다. 기분이 어떤까.
신현준: SBS '바보엄마'라는 드라마를 촬영할 때 진짜 돈 많은 역할을 맡았다. 세트장도 엄청 고급스러웠는데 여기(더헤븐 리조트 펜트하우스)가 7,000배는 더 멋있는 것 같다. 가족끼리 놀러 오면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체대 전공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혹독한 밑거름이 있었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께 혹독한 훈련을 받았죠."
공형진: 신현준의 배우 인생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나.
신현준: 시네마 키드였다. 부모님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셨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시절에 성룡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아시다시피 성룡 영화 중 생각보다 전체관람가가 아닌 작품이 많다. 극장 문 앞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매번 무사히 통과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생겼는데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들여보내 준 것 같다.
공형진: 애초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 개봉작 '장군의 아들1'으로 혜성처럼 영화계에 나타났다. 출연 배경이 궁금하다.
신현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연기에 대한 꿈이 자리했나보다. 내재 돼 있던 것을 임권택 감독님이 건드려서 폭발한 것 같다. 대학교 때였다. 당시 '장군의 아들' 책이 굉장히 유명했고, 저 역시도 읽었다. 김두한 이야기인 걸 알면서도 저는 '하야시'에 빠져 있었다. 우연히 '장군의 아들' 오디션 소식을 들었고, 존경하는 임권택 감독님 영화라는 걸 알고 주저 없이 신청했다. 당시 1,000여 명이 오디션을 봤고, 저는 마지막 순서였다. 임권택 감독님, 배창호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 배우 강수현 누나 등이 심사위원으로 계시더라.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본인이 김두한 얼굴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하야시를 연기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더니 또 놀라시더라. 다들 김두한 하겠다고 왔는데 유일하게 저만 하야시를 이야기 한 거다.
공형진: 그렇게 '장군의 아들' 1,2,3에 이어 '은행나무침대'까지 잇따라 흥행작에 출연했다. 특히 체대 전공 아닌가. 연기에 '연'자도 몰랐던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천부적으로 타고난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더라. 그렇다고 해도 '운'으로 스타덤에 오른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물론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힘든 시장에서 30년 넘게 톱배우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밑거름이 뭐였나.
신현준: 혹독한 밑거름이 있었다. '장군의 아들'을 찍기 전 4~5개월 동안 엄청난 훈련을 받았다. 위대한 스승 임권택 감독님이 연기 지도를 해 주셨고, 촬영하는 내내 세심하게 저를 가르치셨다. '장군의 아들'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공형진: 수많은 출연작 중 자신이 뽑은 TOP3는 어떤 작품인가.
신현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관객에게 사랑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얼마나 좋은 추억을 선물했느냐가 먼저 인 것 같더라. 그래서 좋아하는 동생 공형진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블루' '맨발의 기봉이'도 의미 있다. 무엇보다 임권택 감독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장군의 아들'과 아직도 일기예보에서 제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쓰고 있는 '은행나무 침대'가 아닐까 싶다.
공형진: 선 굵은 연기를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신현준: 어렸을 때 성룡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하지 않았나. 애초부터 코미디물을 굉장히 좋아했다. '하야시'로 데뷔해서 당시 어린 나이에 멋있는 캐릭터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멋진 장면에서 유머를 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런 마음이 쌓일 때쯤 '킬러들의 수다'를 만났다. 제가 억지로 웃기지 않아도 상황이 재미있는 영화였는데 흥행에도 성공했다. '킬러들의 수다'를 계기로 관객들에게 제가 코미디를 하는 것에 대한 괴리감이 줄어든 것 같았다. 이후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하면서 '아랍인'이 됐고, 코가 계속 자라는 사람이 됐다. 하하하.
공형진: 사실 배우를 하면서 가족을 잘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도 신현준은 둘 다 잘 해내고 있다. 저는 잘 못 한다. 비결이 뭔가.
신현준: 아내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남편이 됐을 때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가 되고 나니 포기하게 되더라. 어렸을 때 배우 하겠다고 했을 때 머리도 깎여 본 적이 있고, 가출도 했었다. 그만큼 제 꿈을 사랑했고 고집스럽게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모든 걸 내려놓게 되더라. 두 가지 다 잘하지 못했다. 하나를 포기한 적이 많다. 이를테면 해외에 가서 촬영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 포기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저는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공형진: 고(故) 김수미 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곧 1주기가 온다.
신현준: 아버지가 소천하신 지 12년이 됐다. 주변에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고 하는데 안 괜찮더라. 슬픔은 똑같이 남아 있다. 김수미 엄마께서도 갑자기 가신 지 얼마 안 됐다. 너무 보고 싶다.
공형진: 김수미 선생님 빈소에 가지 못한 이유가 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김 선생님이 떠나셨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아버지를 모신 곳에 선생님도 모셨더라. 아버지에게 가는 길에 김수미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써 놓고 왔다.
신현준: 20주년 팬미팅을 위해 일본에 가려고 공항에 도착했다. 아내한테 전화가 왔는데 김수미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믿기지 않았다. 김수미 엄마 친아들 정명호에게 전화했더니 장례식장도 못 잡았다더라. 그 길로 차를 돌려서 무작정 서울로 가서 울면서 장례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날 어렵게 일본으로 갔는데 승무원들, 일본팬들 모두 '괜찮냐'고 하는 거다. '내가 수미 엄마 아들이 맞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엄마, 부족한 아들을 늘 챙겨 주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요. 하늘나라에서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쉬고 계세요. 나중에 행복한 모습으로 만나요. 사랑합니다."
-신현준 인터뷰 3편에서 계속됩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k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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