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일 무역 합의 이행 명령에 서명하면서 일본 자동차는 내주부터 낮아진 관세 혜택을 누리게 됐다. 그러나 동일한 합의에 참여한 한국은 행정 절차 지연으로 여전히 고율 관세에 발이 묶여 단기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자동차 관세 격차가 중저가 시장 구도를 흔들면서 한국 기업의 대응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日 먼저 혜택…韓은 뒤처져
백악관은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무역합의 이행 명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일본산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돼 온 총 27.5%(기존 2.5%+품목별 25%)의 관세는 15%로 인하된다. 세관 분류표(HTSUS) 개정은 7일 내 완료돼, 이르면 내주부터 일본산 차량은 낮아진 세율로 수입된다.
반면 한국은 지난 7월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에너지 구매를 조건으로 같은 인하에 합의했지만, 행정명령 발효가 늦어져 여전히 25% 고율 관세를 부담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즉각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반면 한국은 높은 세율을 버텨야 한다”며 “판매가 조정, 마케팅 비용 확대, 물량 조절 등 단기 대응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5500억달러 ‘정치 자금’, 美가 운용
이번 합의는 단순한 통상협정을 넘어 ‘정치 자금화’의 성격을 띤다. 일본은 합의 이행 조건으로 미국산 쌀 구매를 75% 확대하고, 옥수수·대두·바이오에탄올 등 연간 80억달러 규모의 농산물을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여기에 미국산 민간 항공기와 군사 장비 도입도 약속했다.
핵심은 대미 투자다.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미국에 5500억달러를 투자하고, 투자처는 미국 정부가 직접 선정한다”고 명시됐다. 일본이 거액 자금을 제공하지만 운용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이 쥐는 구조다. 걸프전 당시 동맹국이 미국 주도의 전비를 분담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워싱턴은 제조업·첨단산업·지역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자금을 확보했고, 일본은 자국 자금을 내고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도에 들어섰다.
◇한국차, 중저가 시장 직격탄
한국은 행정 절차 지연으로 단기 손실이 불가피하다. 일본산 차량이 낮은 세율 혜택을 누리는 동안 한국산 차량은 여전히 높은 관세에 묶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중저가 세단·SUV 시장에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현대 쏘나타(약 2만5000달러) 한 대를 미국에 수출할 경우, 일본차는 15% 관세(3750달러)만 적용되지만 한국차는 25%(6250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차량 한 대당 2500달러 격차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등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한국차의 판매 전략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관세 인하 지연 기간 동안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한 비용 투입 ▲이로 인한 수익성 악화 ▲결국 중저가 시장 경쟁력 흔들림이라는 ‘연쇄 효과’가 불가피하다. 정부 차원의 신속한 절차 마무리가 시급한 이유다.
◇디지털세까지…美의 ‘패키지 압박’
여기에 디지털세 문제가 ‘패키지 압박’으로 결합될 조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디지털세와 플랫폼 규제는 미국 기술기업을 겨냥한 차별”이라며 “철회되지 않으면 한국산 수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반도체 수출도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망 사용료 법안은 미국 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해온 사안이다. 워싱턴이 이를 공식 협의 의제로 끌어올린 만큼, 한국이 규제를 강행할 경우 자동차 관세와 별개로 통상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 결국 한국 기업은 자동차 관세 지연과 디지털세 갈등이 결합된 ‘이중 압박’, 곧 미국의 패키지 전략에 직면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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