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라도 등장하면 사회적 논쟁으로 비화하곤 했던 이슈들이 지난 3일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한꺼번에 쏟아졌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원 후보자가 사회적 합의를 앞세운 원론적 답변에 머무르지 않고 각 사안의 방향성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견해를 밝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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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차별금지법에는 “필요성과 의미가 크다”며 이젠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했다. 생활동반자법에는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볼 것 같다”며 여가부가 그간 법안 추진에 적극 나서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성매매에 대해서는 “성평등과 공존할 수 없다”며 근절 의지를 드러냈다. 비동의간음죄는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 예방 차원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여성의 건강·재생산권 보장 취지에서 찬성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시각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감한 정책 의제에 대한 질의가 주가 된 청문회 풍경에 여가부 직원들은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여가부 폐지 방침을 전면에 내세우며 부처 기능을 축소하는 데 방점을 찍어 왔다. 무려 19개월 동안 장관 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쟁점 사안에 대한 논의도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다.
일례로 2023년 1월 여가부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가 9시간 만에 입장을 뒤집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여가부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제3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에 해당 방침을 담았다고 했지만, 법무부는 “반대 취지의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부처가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여가부 폐지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
물론 장관 후보자 한 사람의 소신이 곧 입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정부·여당 내 기류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야당과 시민사회는 각기 다른 요구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부담을 느껴 논의를 회피하는 사이 법적 공백은 고스란히 당사자의 몫이 돼왔다. 이번 청문회가 단순한 후보자 검증을 넘어 사회적 공론장을 복원하는 자리로 해석되는 이유다.
현재 격화된 여야 갈등과 내년 지방선거 일정을 고려할 때 국회에서 쟁점 법안이 단번에 추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청문회 발언을 통해 드러난 원 후보자의 입장은 여가부의 향후 행보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다. 민감한 의제들이 모처럼 공론화된 장면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지,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새 정부 가족·여성 정책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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